잡지에서 읽은 시

합덕장 길에서/ 홍신선

검지 정숙자 2017. 2. 2. 23:30

 

 

    합덕장 길에서

 

    홍신선

 

 

  아침나절 읍내 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주곤 했다

  차 안으로 하루같이 그가 올려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들이었나

  저자에 내다 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 시절 앞이 안 보이던 것은 뒤에 선 절량(絶糧) 탓일까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남은 그의 숱 듬성한 뒷머리가 희끗거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깨빡치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

 

  읍내 쪽 그동안 그는 거기 가 올려놓았나

  극지방 유빙(流氷)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에

  웬 장검들로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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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2017-2월호 < # 1>에서

  * 홍신선/ 196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우연을 점 찍다』『삶의 옹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