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커
정숙자
하루 사이로 백년이 지나간다
지금은 오후 세 시, 칠십 혹은 육십 년의 시간이 허리를 끈다
딱히 이유가 낀 것도 아니다
다만 백년이 덮쳤을 뿐
내 쉰아홉의 길목이건만 엉뚱한 사태가 침범-일초일순을 가로막는다
하루에 백년이 머문다는 건 참으로 괴이쩍은 일
하지만 누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구백 년 아닌 게 다행이지
만약 천년이 덮쳤다면 나는 이미 ‘켉’ 꺼졌으리라
아니, 그 누구라도 하루에 천년을 업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우울을 앓아본 이라면 끄덕이리라
나말고도 오늘 하루에 백년을 넘기는 사람들이 있겠거니!
이런 날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고… 조금씩, 조금씩 사상가가 되고…
뿌리 섬세한 시인이 되고… 귀퉁이 찌그러진 ‘안녕’이 되고…
*『시에』2011-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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