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6각형의 사회
정숙자
변-1
점심에 삶은 계란 한 개를 먹었다. 그리고 지금 석식으로 또 한 개를 먹는다. (고기 대신) ‘닭~알=달걀’을 먹는 까닭은 내 허술한 뇌를 지키기 위해서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뇌 속 날개가 퇴화된다는 풍문이 있어 에라! 선수를 치는 것이다. 닭을 새(鳥)로 봐주지 않는 작금이지만 닭도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학․유학까지 보내면, 사교육도 왕창 시키면 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스포츠 닭, 그러니까 싸움닭도 배운 닭이 아닌가.
변-2
정말 영리한 닭을 본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 고향에 살 때, “저 암탉은 여태 알을 낳지 않으니 잡아버려야겄어.” 섬돌 밑을 어정거리던 암탉이 아버지의 그 말씀을 알아듣고는 이튿날부터 충실히 알을 내놨다. 그뿐일까. 암탉이 참으로 슬기롭다는 사실을 우리식구 모두가 알게 되었다. 멍석에 넌 곡식은 안 건드렸으며, 남새밭 채소도 해치지 않고 어린 아이의 손에 들린 고구마도 찍어대지 않았다. 여느 닭들과 달리 조용한 눈을 껌뻑이며….
변-3
그런데 아버지는 다시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다. “저 암탉은 이제 닭이 아니라 영물이 되었어. 잡아야겄어.” 암탉은 새 이상으로 지혜로운 닭이었지만 더는 길이 없었다. 아버지로서는 <너무 영리한 닭>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건 멋진 일이다. 당시 난 열 살 미만의 꼬마였지만 쉰아홉의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암탉을 닭이 아니라 ‘새’였다고 회상한다. 진정 새라면 굳이 날지 않아도 된다.
변-4
암탉은 아버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약간은 원망도 했겠지만 진짜 영리한 닭이었으니까. ‘부용’에서 군산이 어디라고! 검은 기차를 타고 가 선창에 흩어진 조개껍질을 담아다가 빻아 먹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근면성실을 어디서든 추억할 거야.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바치면서도 축복해줘야 할 상대가 있는 법이지. 아버지는 정작 닭만큼도 날지 못했지만, 어느 때 한 번 홰를 치며 새벽을 맞이한 적도 없었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감동적인 새였지.
변-5
요즘 세상은 새가 대세다. 네 발로 버둥대는 짐승뿐 아니라 자동차, 과일, 옷, 책걸상까지도 새가 되려고 한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뇌에서 깃털이 빠져나간다는 학설은 사뭇 위협적이다. 깃털 몇 개라도 달지 않으면 미래는커녕 지난날까지도 놓치고 만다. 그러구러 단백질 앞에서 떨지 않을 자 누구? (고기 대신) ‘닭~알=달걀’을 삶아 먹으며 다층적인 새들의 역사를 뒤적거린다. 어쩌면 새가 될지도 모르는 계란을 두 개나 까먹은 오후의 다큐.
*『다층』2010-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