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들의 누님
정숙자
그들의 언어는 누님의 것이었다
누님은 그윽히 앉아 아리랑을 불렀지만
어깨 밑 편자(編者)와 여러 날개가 아득히 먼 길
트고 있었다
까마득한 그때 누님은 오직
현재와 미래를 아우들에게 걸었다
뿐일까? 더 멀게는 증손자에게까지 덩굴을 불어넣었다
조선의 누님들의 오랜 바람은 간절히! 간절히! 발을 굴렀고 그 구슬픈 아리랑 속에선 무수한 꽃이 붉어
템포를 초월했다
누님의 어깨 밑 편자와 여러 날개는 세계를 석권하는 헤드스핀1)으로, 윈드밀2)로, 터클3)로, 나인틴나인티4)…로
무대를 장식했다
굽이굽이 누님의 아리랑 가락에는
한(恨)과 인내와 기원의 강물이 흘러
넓이로는 다 감쌀 수 없는 파편적 언어가 됐다
오늘, 객석에서 햇살로 박수치는 이슬도 알고 보면
그 누님이요 꽃다발을 바치는 여인도
그 누님이다
내일도 모레도 아리랑은 굳이 여윈다
1) 머리로 돌기(비보이 용어)
2) 어깨 탄력을 이용, 다리를 풍차처럼 돌리기(〃)
3)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손을 바꾸어 회전하기(〃)
4) 1990년도에 만들어져 붙은 이름. 한 팔로 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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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2011-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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