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홀릭(butterfly holic)
정숙자
손톱나비
버려지는 전단지나 신문, 잡지 등에서 나비를 오려내는 수공이 오늘도 이어진다. 그건 나비에 대한 애정이며 종이에 대한 우정이며 나 자신에 대한 신의이다. 살아 숨 쉬는 나비를 채집하고 표본을 만드는 행위는 나비사랑이 아니라 신성모독일 것이다. 나비야말로 섬세한 신의 시(詩)이자 철학이기 때문. 틈틈이 오려낸 형형색색 나비들은 작고 아름다운 나비 상자에 담겨진다.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내 편지지를 꾸며주기도 하고, 연하엽서에 배치되어 전국 방방곡곡 행운의 전령사로 날아가기도 한다. 손톱나비를 꺼내볼까.
휴지통에 빠지다
손톱나비란 새끼손톱만한 나비를 지칭하는 나 혼자만의 명사다. 그렇게 작은 나비를 오릴 때는 0.1mm라도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히 안경알을 닦고 가윗날을 조심해야 한다. 뿐이겠는가, 손끝에 걸리지 않는 눈꼽나비는 족집게로 날개를 잡고 정성껏 오려내게 된다. 그렇게 얻은 나비는 마음을 기울인 만큼 여느 나비보다도 사랑옵다. 그런데 언젠가 그런 과정의 결과물인 손톱나비를 무심결에 가윗밥과 함께 휴지통에 쓸어 넣고 말았다. 뒤늦어서야 아차! 정신을 차리고 휴지통을 뒤졌으나 그 조그만 을래(隱邏)*가 눈에 띌 리 없었다.
*술래의 반대말. 숨바꼭질에서 술래는 찾는 아이이고 숨은 아이는 도둑의 개념이다. 술래의 본딧말은 순라군(巡邏軍)의 준말인 순라(巡邏)라고 한다. 그런데 ‘숨은 아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없어 유음화현상에 따라 만든 필자의 신조어이다.
너도 나를 못 잊었구나
나비는 꽤 오랫동안 내 편지지와 연하장의 라벨이 되었기에 웬만한 수효로는 충당키 어렵다. 올해 (부쳐온 시집을 읽고) 띄운 편지만 해도 벌써 50통에 이르니 말이다. 그러나 꼭 수효 때문만은 아니다. 퇴색할 수 없는 나비광으로서 어떤 나비도 소중한 까닭이다. 어쨌든 휴지통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집고 또 뒤집었으나 건초더미 속에 숨은 바늘과 다름없는 나비!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나한테도-우편물을 받게 될 누군가에게도 기쁨을 전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런데 돌아서려는 찰나 언뜻 날개를 내보인 나비!
세 번 태어나는 나비
포유류는 태내에서 수족을 구비하여 곧바로 태어난다. 조류는 알로 태어난 다음 어미의 온기에 의해 또 한 번 태어난다. 그러나 나비는 알로 태어나고 벌레로 재생하고 나비라는 이름으로 삼생을 연다. 나비의 전전생인 알은 태어나는 순간 어미 없이 노출된다. 버러지로 재생할 때도 저 혼자 꿈틀거려야 하고, 번데기로 매달려 어둠을 깰 적에도 혼자 힘으로 날개를 드러낸다. 한 생에서 삼생을 사는 나비는 연약하지만 꿋꿋하고, 고독하지만 고요하다. 내 그를 붕우로 여기는 데는 그럴만한 미덕과 숭모가 자리한 연유이다.
*『수필시대』20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