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문학적인 선언문/ 김이듬

검지 정숙자 2017. 2. 1. 12:53

 

 

    문학적인 선언문

 

    김이듬

 

 

  '사랑스러워'를 '사랑해'로 고쳐 말하라고 소리 질렀다

  밥 먹다가 그는 떠났다

  사랑스러운 거나 사랑하는 거나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나

 

  죽은 친구를 묻기도 전에

  민첩하게 그 슬픔과 분노를 시로 쓰던 친구의 친구를 본 적 있다

  그 정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난 멍하니 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인은 시인다워야 하나

 

  오늘 나는 문학적인 선언문을 고민한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이미 써서 카페에 올렸다

  주저 말고 서둘러야 한다

  적이 문제다

 

  '-적은'-다운, -스러운'의 의미를 가진 접사인데

  '문학적文學的'이라는 말

  문학적 죽음, 문학적 행동, 문학적 선언, 시적 인식, 시적인 소설

  나는 지금 시적으로 시를 쓸 수 없구나

 

  문학적인 선언문을 쓰자는 말은

  왕에게 속한 신성한 것을 그냥 불러서는 안 되는 폴리네시아 인처럼

  은유로 도피하라거나

  수사적 비유를 사용하라는 뜻은 아닐 텐데

  나는 한 줄 쓰는 데 좌절하고 애통함에 무기력하다

 

  그리하여 난 또다시 적의 문제로 적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시적이지 않은 시를 쓰며

  시인답지 못하게 살다

  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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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6. 11-12월호 <시사사 초대석/김이듬 시인이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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