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바치는 송가
이병일
"여기서는 슬픔 금지예요. 우울해 보이면 다시 배를 못 타거든요.
선주들은 우울한 사람이 선상 폭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KBS 스페셜-슬픔 금지, 참치 사냥꾼의 40일의 기록」
배 위에서 녹아 흐르는 것은 살아갈 용기다
참치가 잡히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다
밤에는 오징어를 잡고 그 오징어로 참치를 잡는다
태양은 딱딱하지만 참치 생각만으로 한여름을 견뎌야 한다
가깝고도 멀리 있는 참치의 초록빛 눈알을 생각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어리광과 눈물마저 증발시키고
저 뱃길 위의 갈매기 떼만 바라보며 신물 나도록 늙어 가
야 한다
낙담은 횟배보다 더 무서운 짐승이니까
나는 그저 맨손으로 낚싯줄을 감았다가 풀고 또 감았다가
풀고
그렇게 질리도록 참치 이야기로 몸이 어두워져야 한다
아니,
마른 오징어만 뻔질나게 씹는다 미간이 잠시 접혀진다
접혀진 곳마다 파랑 무늬가 차고 그늘이 고인다
손등에 흐르는 피와 낙조와 절망은 사촌지간도 아닌데
반바지 추켜올리는 나의 저녁에 붙어 있다
앙앙 빛나다가 부서지는 것들 속에서
오늘도 눈에 띄지 않는 참치 생각에 바다는 입을 닫았다
그러나 꼭지 돌고 정신이 으스러질 즈음
청새치가 나의 심장 왼쪽을 찔렀다 툭툭 피가 끊긴다
극히 소소한 일이군, 그건 절망도 아니라니까
그때 나를 꾸짖고 나무라는 참치의 바다가 비참을 씻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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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2016-겨울호, 분노/ <poem>에서
* 이병일/ 2007년『문학수첩』으로 시 등단, 시집『옆구리의 발견』『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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