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책을 읽다/ 장옥관

검지 정숙자 2017. 1. 28. 19:33

 

 

    책을 읽다

 

    장옥관

 

 

  하루는 졸업을 앞둔 제자가 찾아와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제 내일을 들려주었다.

  전문장례식장이라 했다.

  유난히 희고 긴 손가락을 가진 제자였다.

  한 몸 가득히 적혀 있을 필생의 문장

  더듬어 읽는 일보다 더 큰 시 공부가 어디 있겠느냐,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나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 상수야, 니 손으로 날 보내 줄 수 없겠나?

  갑자기 목덜미를 붉히더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그는 약

속했다. 보여 주기에 너무 축축한 책이지만,

  선생 따라 살지 않는 것이 공부라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굽어 비뚤어진 삶의 척추

  마음의 허기 늘 채울 수 없어 짜그라진 미간

  반듯이 세워 주고 펴 주는 손길에

  내 생의 방점 찍고 싶은 것이다.

  잠시 끊긴 대화의 행간 속

  사랑 앞에서도 파렴치했던 어제의 검은 씨앗이 주검 위

에 엉겅퀴의 활자로 무성해질 내일 읽으며

  내가 진저리치는 동안

  제자는 제자대로 눈 오는 창밖 보며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

  *『계간 파란』/ 2016-겨울호, 분노/ <poem>에서

  * 장옥관/ 1987년『세계의 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황금 연못』『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