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장옥관
하루는 졸업을 앞둔 제자가 찾아와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제 내일을 들려주었다.
전문장례식장이라 했다.
유난히 희고 긴 손가락을 가진 제자였다.
한 몸 가득히 적혀 있을 필생의 문장
더듬어 읽는 일보다 더 큰 시 공부가 어디 있겠느냐,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나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 상수야, 니 손으로 날 보내 줄 수 없겠나?
갑자기 목덜미를 붉히더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그는 약
속했다. 보여 주기에 너무 축축한 책이지만,
선생 따라 살지 않는 것이 공부라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굽어 비뚤어진 삶의 척추
마음의 허기 늘 채울 수 없어 짜그라진 미간
반듯이 세워 주고 펴 주는 손길에
내 생의 방점 찍고 싶은 것이다.
잠시 끊긴 대화의 행간 속
사랑 앞에서도 파렴치했던 어제의 검은 씨앗이 주검 위
에 엉겅퀴의 활자로 무성해질 내일 읽으며
내가 진저리치는 동안
제자는 제자대로 눈 오는 창밖 보며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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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6-겨울호, 분노/ <poem>에서
* 장옥관/ 1987년『세계의 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황금 연못』『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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