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신기훈_경계를 지우는 반동일화 전략과 날개의 언어(발췌)/ 이런 순간 : 김승희

검지 정숙자 2017. 1. 27. 02:03

 

 

    이런 순간

 

     김승희

 

 

  세상은 지하수와 지하수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다가

  구름과 구름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나날이다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가

  끊어져 있기도 하는데

 

  무슨 일로인지 철로를 건너가고 있을 때

  불현듯 하얀 나비가! 눈앞에 눈보라처럼 흩어지며

  마구 날아온다

  세상의 찬란이 내 품에 안겨 들어오는

  일순간이다

 

  이런 때 갑자기

  몸 속에 아프게 박힌 돌멩이들이

  반짝이는 사리로 깨어나는 것 같은데

  사랑의 순간이랄까, 보답의 순간이랄까

  세상이 그저 허무하고 참 고맙다

    -전문-  

 

 

   경계를 지우는 반동일화 전략과 날개의 언어(발췌)_ 신기훈

  이 시에서 말하는 '하얀 나비'떼는 숙명적으로 주체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에 대한 반발로 비상하고 상승한다.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은 일상적 안주를 요구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요구이다. 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착한 주체'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하수'는 땅밑 물길을 따라 아래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낮은 곳을 향해 정해진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다. 그러나 '구름'은 독립적으로 날고 있으면서도 또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물의 알갱이들이다. 그 알갱이들은 단자적 독립성을 지니면서 연대를 통해 하나의 현상을 만든다. '지하수'가 아니라 '구름'으로 이어져 있는 존재들의 자유로움. 우리의 생이 비극적 허무로 종결될 것을 알지만, 세계내적 존재가 주체의 억압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현실에 맞서는 방법은 이처럼 '날아오르는 것'이다. 존재 본연의 가치와 생명력을 되찾는 방법은 이 지상의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르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몸 속에 아프게 박힌 돌멩이들'은 '반짝이는 사리'로 화할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담론 구성체에 끊임없이 반성적 주체로서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노력을 계속할 때 이와 같은 자유로움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폭력성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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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야나』2016-겨울호 <신작시 특집>에서

  * 신기훈/ 1991년 『심상』으로 시 등단, 경북대 박사 학위 논문 「1950년대 현실주의시의 대항담론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