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비움과 틈새의 시간/ 곽효환

검지 정숙자 2017. 1. 25. 01:52

 

 

    비움과 틈새의 시간

 

    곽효환

 

 

  푸르게 일렁이던 청보리 거둔 빈 들에

  하얀 소금덩이 같은 메밀꽃을 기다리는

  비움과 틈새의 시간

 

  배꽃과 복사꽃 만발했던 자리에

  코스모스와 키 큰 해바라기 몸 흔들고

  배롱나무 더 붉게 물드는

  세상의 풀과 나무와 산과 강이

  마침내 제각각의 빛깔을 머금는 강변습지

  징검다리 여남은 개면

  눈에 띄게 수척해진 물살을 건너

  다음 계절에 닿을 듯하다

 

  크게 물굽이를 이루며 사행하는 물살에

  수없이 부딪히며 어질고 순해진 돌들에게서

  거친 시대를 쓿는 소리가 들린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뿐이랴마는

  초록이 다 지기 전에

  풀길 따라 난 길이 문득 끊어진

  강변마을 어느 허술한 찻집에 들어

  아직 고여 있는 것들

  미처 보내지 못한 것들

  함께 흘려보내야겠다

  빠르게 질러감으로써 놓친 것들

  그래서 잃어버린 것들

  찬찬히 새김질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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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刊文學』2017-2월호 <시>에서

  * 곽효환/ 1996년 《세계일보》와 2002년『시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 시작함, 시집 『인디오 여인』『슬픔의 뼈대』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