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필
김제김영
돌기둥들이 흰 먹을 갈고 있다
파지(破紙) 갈무리했던
검푸른 서랍을 열면
아버지 일기장에 갇혔던
묵향이 수평선까지 번져 나갔다
왕작살나무 가느다란 가지가
휘청, 눈썹달을 놓치는 순간
가지 옆 우두커니 서 있던
침묵이
기억의 푸른 괄호를 풀었다
등지느러미 너울거리는 등댓불은
난바다까지 길게 걸었다
꿈의 한 획도 그어보지 못한 채
청년 아버지는
외마디 비명도 없이,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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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 2016-겨울호 <다층시단>에서
* 김제김영/ 1996년 시집『눈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작품활동, 시집 『다시 길눈 뜨다』『나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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