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화(山挑花)1
박목월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전문-
▶ 사물의 속성과 상상력의 작용(발췌)_ 이숭원
이 시는 실제적인 그의 첫 시집인 『산도화』(1955)에 수록된 작품이다. 『청록집』에 실린 「청노루」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산수화의 여백의 미를 시의 형태로 실험한 작품이다. 각 시행은 자연의 사물을 하나씩 제시하고 거기서 환기되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체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형국이다.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의 구조는 「청노루」에 나온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과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을 합해 놓은 것 같다. '산은-구강산-석산'으로 이어지는 유사 음운의 연쇄에 '보랏빛'이라는 거친 음절이 개입하여 변주를 일으킨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박목월은 자연의 정결한 아름다움에 호응하는 곱고 부드러운 정감의 시어를 골라 배치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가을 어스름」에 "청석(靑石) 돌담"이 사용된 것처럼 여기에는 "보랏빛 석산(石山)"이 제시되었다. 검푸른 빛깔의 암벽을 지닌 산을 가리킨다. "구강산(九江山)"도 아홉 줄기의 강이 흐른다는 뜻보다는 '구강산'의 우아한 울림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이라는 부드러우면서도 산뜻한 소리의 울림이 어느 호젓한 자연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 그곳에 봄이 깃들어 산도화가 두어 송이 봉우리를 벌리고 있다.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라는 구절도 '송이'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하여 음성적 효과를 살리면서 의미는 구분되게 배치했다. 산중이라 야생의 산도화가 핀다고 했다. 요염한 도화가 피는 것보다 수수한 산도화가 피는 것이 시인이 추구하는 정결한 미학에 더 어울린다. 그것도 "두어 송이" 핀다고 했으니 정갈한 순결의 심정에 어울리는 배치다. / 3연의 "봄눈"은 「청노루」의 "봄눈"처럼 봄이 올 때까지 산정에 남아 있던 눈을 뜻한다. 겨울 내내 봉우리에 쌓여 있다가 봄기운에 녹아 흐르는 맑은 물이기에 "옥 같은 물"이라 했다. 이 맑은 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삼월」의 '암노루'는 맑은 물로 목을 축이고 흐르는 구름에 눈을 씻었다. 여기서의 '암사슴'은 발을 씻는다.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씼는다."라는 시행은 이 정결한 공간에서 발을 씻을 대상은 수사슴이 아니라 마땅히 '암사슴'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곱고 깨끗한 공간에 어울리는 존재로 그렇게 부드럽고 고운 여성 생명체를 배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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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2017-1월호 <기획 특집/ 사물과 상상력>에서
* 이숭원 / 19786『한국문학』으로 등단, 1평론집『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현재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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