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추문(醜聞)/ 김은상

검지 정숙자 2017. 1. 5. 12:42

 

 

    추문醜聞

 

    김은상

 

 

  이를테면 구석은 나비를 품고 있다.

 

  벽은 벽으로 흘러가기 위해 제 몸을 꺾어 스스로 구석이 된다.

 

  구석에서 꽃처럼 앉아 울어본 사람은 안다.

 

  희망이나 행복, 사랑 같은 말들이 얼마나 연약하게 화들짝 지는지를.

 

  나에게도 애인이 있었고 다정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리라는 다

짐이 있었지만,

  삶은 언제나 맹세와 무관하게 살아졌다. 하여 구석은

 

  글썽이는 비밀들의 성소(聖所)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구석으로 모여들었다.

  벽을 치며 가난에 찌든 부모를 원망하거나 빚을 재촉하는 채권자를

저주하기도 했지만

  비밀이 추문이 되는 순간 구석은 더욱 단단해졌다. 가령,

  친구의 남편과 야반도주한 여자의 이야기 같은.

 

  어떠한 소문이 사실과 일치한다 해도 열매가 달콤하다거나 혹은 떫

다고 말하는 세간의 비평은

  한 세계의 구석을 맛본 것이 아니기에 용서가 가능하다.

 

  자신의 비루함을 견디기 위해

  자신의 내부를 향해서만 날카로워지는 구석들.

 

  어머니의 주름,

  나무의 주름,

  물의 주름처럼,

 

  깊은 것들은 그 속을 알 수 없다.

 

  구석에서 울다가 잠든 새벽 한쪽 날개를 다친 나비가 기우뚱거리며

날아가는 공중을 본다.

 

  너에게로 날아가도 닿을 수 없는 저기에 저,

  서러운 구석들.

 

  용서라는 말을 요구하지 않는 구석에 쥐가 구멍을 뚫는다.

  구멍이 꽃을 피운다.

 

  어쩌면 나는,

  나를 닮은 너의 환한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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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16_12월호 <신작특집>에서

  * 김은상 2009년『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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