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박소란
유리창이 깨어졌습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을 전부터 기다려 왔다는 듯
누가 돌을 던졌을까요?
막무가내로 들이친 햇살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깨어진 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다가섰을 때
반짝이는 파편이
나를 조금 아프게 했지요 먼 데서 훔쳐 온 빛처럼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그 피 흘리는 낯으로
밥을 먹고 잠을 잤습니다 새벽이 오면
습관처럼 서성대는 어둠을 부르러 갔습니다
깨어진 창으로
누가 사과하러 올까요?
-전문, 『대산문화』, 2016. 가을
▶ 정치의 부재와 시의 대응(발췌) _ 김종훈
"누가 사과하러 올까요?"라는 질문은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시에 윤리적인 문제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박소란의 「내일」의 시적인 지점은 이 질문이 거느린, 작은 파동에서 비롯한다. 방문을 기대한다는 것일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어디에서 이 질문이 시작되었는지 반추해 보자. 돌에 창이 깨졌다. "막무가내로" 햇살이 들이쳤다. '나'는 어둠이 익숙할지언정 빛은 낯설어서 유리 파편 을 밟았을 때처럼 "조금 아프게" 햇살을 본다. '나'에게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은 익숙한 공간을 불편한 공간으로 바꾼 침범자이다. 그러나 창문이 깨지지 않았다면 햇살을 오래 바라볼 수도, 어둠을 부르러 나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질문에는 오지 않으리라는 체념뿐만 아니라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의 의미가 희미하게 섞였다. / 체념과 기대가 공존하는 마지막 질문은 흡사 빛과 어둠이 섞이는 여명이나 일몰의 순간과 같다. 일렁이는 마음의 모습을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겠으나 그 마음이 익명으로 처리된 돌을 던진 이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의 아름다움은 타인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데에서 온전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박소란의 시뿐만 아니라 최근 시가 아름다움의 영역에 다른 영역을 끌어오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세계가 윤리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황폐한 세계임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생활도, 정치도 부재하는 곳에 시는 그와 같은 문제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 세계에 다른 세계의 모습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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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6-가을호 <criticism>에서
* 김종훈/ 2006년『창작과 비평』으로 평론 등단, 저서『한국 근대 서정시의 기원과 형성』『정밀한 시 읽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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