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건너는 사람/ 여태천

검지 정숙자 2017. 1. 2. 23:21

 

 

    건너는 사람

 

    여태천

 

 

  정말로 뭔가를 보지 못할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일 뿐

 

  사람들은 어서 여기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칠흑의 이 밤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누군가 또 다리를 건너나 보다.

  이런 밤이면 인기척도 무섭다.

 

  폭우로 불어난 물 때문인지

  재난 방송이 간격을 두고 울린다.

  선한 의도가 때론 누군가의 목줄을 죄고

  지금의 기쁨이 십 년 뒤의 후회가 될 수도 있는 법,

  떠난 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흙탕물은 단비가 되어 어딘가에 내리기도 하겠지만

  이번 삶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텅 비어 버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는다.

  다리를 건너는 저 사람도 필경 우산이 없을 것이다.

  젖을 대로 젖어서 건너는 것일 뿐

  여기의 모든 생이 다 그러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과거는 반복으로 판명되지만

  미래를 저 구름의 모양으로는 알 수 없다.

  다리 아래로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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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16-가을호 <poem>에서

   * 여태천/ 2000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저렇게 오렌지는 익어가고』『국외자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