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종훈_정치의 부재와 시의 대응(발췌)/ 폭풍이 오면 : 이영광

검지 정숙자 2017. 1. 2. 02:14

 

 

    폭풍이 오면

 

     이영광

 

 

  내 가장 소중한 것이 세상 가장 흉측한 것들에게 찢기고

시달리는 꿈에 쫓겼다

  네 가장 소중한 것이 내 가장 흉측한 것에게 찢기고 시달

리는 망상을 모르고

 

  사랑은 감히,

  멀다

 

  폭풍이 오면, 들판에 선다

  폭풍이 오기만 하면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幻覺처럼, 들판에 선다, 나에게만 발견되는 너의

  幻覺처럼

 

  들판에, 들판의 들판에

  들판의 멀어지는 한 점 들판에

 

  나는 오래 죄 없는 벌을 몰랐지만

  지금은 감히,

  벌 없는 죄를 모른다

    -전문, 『계간 파란』, 2016. 여름

 

 

  정치의 부재와 시의 대응(발췌) _ 김종훈

  "소중한 것"이 찢기는 느낌은 모두 불확실한 미래나 꿈, 명상이나 환각 등을 배경으로 나타난다.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불확실한 세계를 조성하고 그 안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밀어넣은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세계는 다시 각성의 시간과 뒤섞인다. 한편 그의 가까이는 "흉측한" 것들이 있고 그 멀리는 사랑이 있다. 사살의 반대편에 배치된 이 "흉측한" 것은 떨쳐 버리려 애써도 달라붙는 죄의식과 같다. 그 죄의식은 늘 따라다니는 것으로 처벌로 변모한다. 착란의 세계를 만들어도 그 세계에는 폭풍을 맞게 하는 들판이 꼭 있다. 들판은 처형의 장소이며 폭풍은 처벌 행위인 것이다. / 그의 예언적 태도는, 죄의식을 환상 속으로 은폐하려 했던 시도가 실패한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벌을 받으면 죄를 지은 것이라는 말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말도 모두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 내용이다. 앞의 말은 모든 처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뒤의 말은 모든 죄에 미래에서 온 경고장을 보내는 것으로 공동체를 유지한다. 인용 시가 이와 같은 경구와 갈라지는 지점은 속뜻 때문이다. 시는 '(내가) 죄를 지으면 (공동체가) 벌을 준다'가 아니라 '(내가) 죄를 지으면 (내가) 벌을 받는다'의 뜻을 담았다. 처벌받지 않는 죄들로 둘러싸여 있는 시대를 살면서 시인은 홀로 죄를 짓고 처벌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공동체를 위하여 윤리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를 내재화하는 것으로써 공동체의 문제를 숙고하는 것이 이영광이 보여 주는 시적 개성이다. 아름다움은 선악의 문제에 자리를 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둘이 포개져 아름다움의 외연을 넓힌다. 주관과 객관이 뒤섞인 나날의 삶에는 그렇게 선악과 아름다움이 공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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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파란』 2016-가을호 <criticism>에서 

  * 김종훈/ 2006년『창작과 비평』으로 평론 등단, 저서『한국 근대 서정시의 기원과 형성』『정밀한 시 읽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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