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검지 정숙자 2016. 12. 19. 00:50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1948~1991, 43세)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령하는 밤이면

  나는 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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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시대』 2016-겨울호 <문혜원 교수의 시인 깊이 읽기>에서

  * 문혜원/ 문학평론가 · 아주대 교수 · 본지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