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에필로그epilogue/ 박수현

검지 정숙자 2016. 12. 20. 19:19

 

 

    에필로그epilogue

 

    박수현

 

 

  그때, 나는 섬의 해변 쪽에 앉아 있었다

  한쪽은 대양ocean, 한쪽이 만bay인 그곳에서

  야생마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오래 전 침몰된 전함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조상보다

  키가 두어 뼘이나 작아졌다는 말들은

  눈망울을 끔벅거리며 가끔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가끔 푸르르 숨을 뿜으며 갈기를 흔들면

  버석거리는 소금이 한 움큼 등판으로 튀어 올랐다

  뭉게구름이 하늘을 오후 일곱 시로 옮겨 왔다

  갑자기 말들이 하얀 모래톱으로 몰려갔다

  누가 채찍으로 적막의 등을 후려치지지도 않았는데

  흰 포말 같은 울음을 게워내며 파도 속으로 잠겨 들었다

  나는 만 쪽으로 의자를 고쳐 앉았다

  소란스럽던 한여름 바다는 외로워지고

  노을의 붉은 옆구리를 찌를 듯

  길게 뻗은 팜파스 그래스가 늪지의 검초록을 업고 흔들렸다

  찻잔 속 레몬 조각 같은 달이 사구 너머로 떠오르자

  새색의 카누가, 카누를 젓던 사람들이 지워졌다

  단호한 거절과 애매한 변명처럼

  건재한 당신과 늙어버린 나의 거리처럼

  대양과 만을 반으로 잘라낸 섬의 이분법적 풍경이

  경계를 지우며 천천히 하나로 합쳐졌다

  불현듯 까맣게 잊었던 설움 같은 것이 올라와

  소슬한 한기를 양 팔로 감싸 안았다

  부서지며 밀려가던 말발굽 소리가

  아직 내 꿈의 모래톱에 조개껍질처럼 박혀 있는데

  그 섬은 지도상에는 기록되지 않은 곳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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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16-겨울호 <2000년대 시인 20인 신작시>에서

  * 박수현/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