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주경림_언어의 건축술과 시간 운용의 妙(발췌)/ 아버지의 아버지 : 윤정구

검지 정숙자 2016. 12. 20. 19:00

 

 

    아버지의 아버지

 

     윤정구

 

 

  어느 날 마침내 나도 베어졌다

  침목이 되어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아버지 옆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엮인 굴비두름처럼 차례로 누워 있었다

  아버지를 밟고 달려온 기차는 내가

  어찌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나를 지나쳤다

  가뿐 기차의 기적이 사라지면

  천지는 다시 적막강산

  나는 비에 젖어 투정도 하고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기도 하면서

  어둠 속에 떠오를 맑은 눈빛,

  다정한 별을 기다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

  기차는 어디고 가는 것이지요?

 

  자꾸 질문을 해대는 내 손을

  아버지는 말없이 꽉 잡고 있다

     -전문-

 

   ▶ 언어의 건축술과 시간 운용의 묘妙(발췌) _ 주경림

   의기차가 다니는 철도에 깔린 침목이 시「아버지의 아버지」 배후 풍경이다. 시인은 그 서정적 풍경에서 가족 무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란히 깔린 침목은 "엮인 굴비두름처럼 차례로 누워" 있는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들 영상으로 환치된다.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의 생명이자 정점"이라고 한 영국의 시인이며 극작가, 비평가이기도 한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의 말처럼 일단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

  이미지가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는 현실적인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첫 행에서 시적 화자의 죽음을 암시하는 미래가 "어느 날 마침내 나도 베어졌다"는 과거 상황으로 시의 도입부를 연다. 시인이 5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 자바 원인의 해골에서 본 웃음이 서울에 와서도 할아버지의 웃음, 아버지의 웃음, 시인의 목소리로 그 웃음소리가 이어진다(「와하하하- -」)했듯이 시간의 간극이 무너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 아버지를 밟고 달려온 기차는 순식간에 '나'를 지나치는데 기차는 이승의 시간이 덧없이 흘러감을 상징한다. 기차의 기적이 사라지면 가상 세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유윤정구 시인의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죽음 체험이다. 투정도 하고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기도 하면서 다정한 별을 기다린다는 낭만도 있어 저 세상의 삶 역시 이 세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 하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실존적 불안과 "기차는 어디로 가는 것이지요?"라고 묻는 호기심 또한 그렇다. 문득 우리에게 죽음이 상상력의 원천이며 보고로 더할나위 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없다면 애써 열심히 살아가야 할 생 또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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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 2016-겨울호 <중견시인의 신작 소시집>에서

  * 윤정구/ 경기 평택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과 속의 달빛 여우』등 4권, 저서 『한국 현대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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