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우리의 죄는 야옹/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16. 12. 15. 15:03

 

 

    우리의 죄는 야옹

 

    길상호

 

 

  아침 창유리가 흐려지고

  빗방울의 방이 하나둘 지어졌네

  나는 세 마리 고양이를 데리고

  오늘의 울음을 연습하다가

  가장 착해 보이는 빗방울 속으로 들어가 앉았네

  남몰래 길러온 발톱을 꺼내놓고서

  부드럽게 닳을 때까지

  물벽에 각자의 기도문을 새겼네

  들키고야 말 일을 미리 들킨 것처럼

  페이지가 줄지 않는 고백을 했네 

  죄의 목록이 늘어갈수록

  물의 방은 조금씩 무거워져

  흘러내리기 전에 또 다른 빗방을을 열어야 했네

  서로를 할퀴며 꼬리를 부풀리던 날들,

  아직 덜 아문 상처가 아린데

  물의 혓바닥이 한 번씩 핥고 가면

  구름 낀 눈빛도 조금씩 맑아졌네

  마지막 빗방울까지 흘려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되어

  가벼운 일상으로 폴짝 내려설 수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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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 2016-겨울호 <문학청춘의 시와 시인>에서

  * 길상호/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눈의 심장을 받았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