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는 야옹
길상호
아침 창유리가 흐려지고
빗방울의 방이 하나둘 지어졌네
나는 세 마리 고양이를 데리고
오늘의 울음을 연습하다가
가장 착해 보이는 빗방울 속으로 들어가 앉았네
남몰래 길러온 발톱을 꺼내놓고서
부드럽게 닳을 때까지
물벽에 각자의 기도문을 새겼네
들키고야 말 일을 미리 들킨 것처럼
페이지가 줄지 않는 고백을 했네
죄의 목록이 늘어갈수록
물의 방은 조금씩 무거워져
흘러내리기 전에 또 다른 빗방을을 열어야 했네
서로를 할퀴며 꼬리를 부풀리던 날들,
아직 덜 아문 상처가 아린데
물의 혓바닥이 한 번씩 핥고 가면
구름 낀 눈빛도 조금씩 맑아졌네
마지막 빗방울까지 흘려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되어
가벼운 일상으로 폴짝 내려설 수 있었네
----------------
*『문학청춘』 2016-겨울호 <문학청춘의 시와 시인>에서
* 길상호/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눈의 심장을 받았네』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각자시대/ 정숙자 (0) | 2016.12.17 |
|---|---|
| 싯다르타/ 정숙자 (0) | 2016.12.17 |
| 칼집/ 박해람 (0) | 2016.12.15 |
| 권온_생생한 현장감과 내면의 열정(발췌)/ 라싸로 가는 바람 : 김제김영 (0) | 2016.12.15 |
| 모래 고래/ 김제김영 (0) | 2016.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