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조목
박찬세
나무를 심을 때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데
손발이 차다는 사람을 생각하며 대추나무를 심다가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그만 이름을 심고 말았다
아득함을 심고 말았다
뻗어나갈수록 더하는 갈증을 심고 말았다
흙 속을 더듬으며
바람을 훔치고 그늘을 훔치고 비를 훔치는
도벽을 심고 말았다
나무를 심을 때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데
나무가 벼락을 훔쳐 울음을 몸속에 새기려 든다는데
이름을 훔쳐 물속으로 물속으로
자꾸만 가라앉으려 한다는데
그만 너의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전문-
▶ 닮다와 닿다(발췌) _ 안서현
박찬세 시인의 「벽조목」을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금기와 주술의 상상력이다. "나무를 심으며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기의 상상력은 뒤켠에 주술의 상상력을 숨겨두고 있다. 나무에 대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버리는 순간, 나무와 그 사람의 이름은 유사한 자리에 놓이게 되고, 유사한 것은 곧 같은 것이라는 주술의 원리에 따라 이제 나무가 곧 그 사람의 이름이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아득함이나 "갈증", 그리고 "도벽"은 그대로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것이다. 허기의 언어는 사랑의 존재를 탄생시킨다. / 여기에 구현되어 있는 것은 닿은 것이 곧 닮은 것이 된다는 -환유가 은유를 부른다는- 시적인 원리이다. "손발이 차다는 사람을 생각하며 대추나무를 심다가/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대추는 손발이 찬 사람에게 좋다, 손발이 찬 사람은 그 사람이다. 언어의 인접성의 축 -그것은 통사적인 축이라고도 불린다- 을 따라가서 대추나무를 심던 '나'의 마음이 가닿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제 닿은 것은 닮은 것으로 변한다. 그 대추나무는 그 사람의 이름의 자리에 놓인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이름으로 은유된다. / 따라서 역으로 그 대추나무는 그 사람의 이름의 의미, 그리고 '나'의 사랑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벽조목은 벼락을 맞아 속이 타버린 나무다. 벼락을 견디는 동안 나무속이 단단해진 나머지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 사람의 이름은 벼락과도 같은 울음으로 몸에 새겨지게 되고, 또 물속과도 같은 슬픔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나'는 언어의 주술에 걸려 치명적 사랑에 이끌려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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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2016-겨울호 <시작이 주목하는 젊은 시인>에서
* 박찬세/ 2009년『실천문학』으로 등단
* 안서현/ 2010년『문학사상』신인평론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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