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순천만 갈대/ 박남희

검지 정숙자 2016. 12. 12. 00:32

 

 

    순천만 갈대

 

    박남희

 

 

  안녕, 너를 어떤 바람에게 맡길 수 있겠니? 너무 쉽게 뒤집히는 계

절, 뒤집혀서 또 뒤집히고 싶어 하는 바람의 계절, 강이 스스로 물든다

고 누가 말했니? 울어서 저 혼자 붉어지는 저녁 강

 

   꽃이 식어서 열매가 되는 것보다 열매 없이 떨어지는 뜨거운 꽃이 좋

아, 제 형체를 공기에게 주고도 끝끝내 뜨겁게 타오르는 꽃, 가벼운 재

의 마음으로도 너를 뜨겁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아

 

  누가 함부로 계절을 정의할 수 있을까? 계절과 계절 사이에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계절이 들어와 끼어드는 이 수상한 저녁에, 비발디의

사계 속을 떠돌던 음표들이 어디론가 망명을 떠나는데,

 

  아직 나는 너를 놓을 수 없어, 구름이 비를 선뜻 버리지 못하고 어디

론가 떠도는 것처럼, 목이 쉬어 무성하게 자라는, 꿈꾸는 소리의 무덤을

버릴 순 없어

 

  온전한 꽃도 되지 못하고, 일탈을 꿈꾸는 바람이나 안개도 되지 못하

고, 끝없는 허기에 제 몸의 소리를 갉아먹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이

갈대를 또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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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16-12월호 <신작시 광장>에서

 * 박남희/ 1996년《경인일보》, 1997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외, 평론집『존재와 거울의 시학』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