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빈집/ 김주대

검지 정숙자 2016. 12. 14. 14:37

 

 

    빈집

 

    김주대

 

 

  허공에 그어놓은 거미의 영토에 깨알 같은

  주검들 나부끼는 곳

  기억을 더듬으며 걸어간 덩굴풀

  무성한 마당 가로질러 그도 다녀갔는지

  부서진 문이 열린다

 

  건너편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먼지 같은 손을 내밀고

  처마 끝에서 풀썩, 도둑고양이가 떨어진다

  거미가 머리를 들고 제 몸을 토하는 집

  혼자 운다

 

  허공의 한 점에 눈길을 풀다

  움켜쥐고 온 시간을 내려놓으면

  노을 지던 들판처럼 마음이 젖는다

  뒷모습만으로 걷던 날들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 서 있다

  바람과 달빛이 다녀가는 몸

  노랑제비꽃 봄망초 장다리꽃 유언들

  우리 그만 사랑하자고 내달리던 시절

  농약병처럼 뒹군다

 

  나는 빈집

  남은 삶도 오래 빈집일 거라고

  도달하지 못한 내 안을 곧 도달할 것처럼 걷는다

  도둑고양이처럼 얼굴에 떨어지는 기억으로

  버리고 온 가족들의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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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2016-겨울호 <오늘의 시인/ 신작시>에서

  * 김주대/ 1989년 『민중시』, 1991년 『창작과 비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도화동 사십 계단』『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외, 시화집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현재《한겨레 신문》「김주대 시인의 붓」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