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선인장 옮기기/ 서윤후

검지 정숙자 2016. 12. 11. 13:59

 

 

    선인장 옮기기

 

    서윤후

 

 

  무심한 사람의 낡은 수첩에는

  사실만이 기록되어 있다 느낌은 생략된 채로

  흙 속 깊숙이 파놓은 마음이

  알아서 자라나길 바라는 것이다

  안전하고 신속한 삶을 사는 동안에는

  죽었다고 생각해야 편안해지는 마음도 있다

  그런 무관심으로 자라난 선인장을 옮긴다

  작은 화분에서 큰 화분으로 가는 일은

  좋은 일이다 축하할 일이야

  햇빛이 늘어진 발코니에 쭈그리고 앉아

  선인장을 꺼낸다 죽은 것을 대하듯 살살

  선인장에 들킨 맨손이 따가울 때

  찔리기 싫어 뾰족해진 날도 있었지만

  나는 비좁아진 곳에 어울리는 화분으로

  아픈 것 뒤에 올 건강한 것을 기다렸다

  손을 털고 작아진 화분의 쓸모를 생각하면

  가시는 선인장의 경험만큼 자라날 것이다

  물 주는 일을 자주 잊는다는 게 그렇다

  단순히 살아있는지 궁금한 안부도 있었다

  생각날 때마다 물을 흠뻑 줘서

  익사한 사람의 숨소리를 듣듯 선인장을 살살

  불 꺼진 방안에서 물 마시러 가는 사람이

  실수로 선인장에 손이 닿거나 미치지 못할 때

  그런 거리에서 내다보이지 않는 것을

  수첩에 받아 적기도 한다

  아직 누구도 읽지 않은 것을 잔뜩 가진 자는

  언젠가 목말라 할 것이니

  그런 안부가 궁금해서 선인장을 키웠다

  돌아갈 수 있는 화분을 깨버린 채로

  단지 모든 게 이 화분에서 끝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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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 2016-겨울호 <신작시>에서

  * 서윤후/ 2009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