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시간을 잃기 위하여/ 김경년

검지 정숙자 2016. 12. 9. 23:05

 

 

    시간을 잃기 위하여

 

     김경년

 

 

  그때 그들은 얼마나 순진했던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숲을 헤매고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을

  백지 위에 펜으로 잡아 매던

  그 시절.

 

  이제 똑똑한 우리들은

  시간을 잃기에 바쁘다.

 

  빨리 빨리 먹고

  빨리 빨리 쓰고

  빨리 빨리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살아 있는 것들은

  빨리 빨리 살

  죽어 가는 것들은

  빨리 빨리 죽고

  모든 것들은 빨리 빨리

  망각의 벼랑으로

  신속히 내몰아,

 

  우리 뒤에 남는 것은

  고속도로 위에

  검은 타이어가 벗겨지며 그어 놓은

  무서운 속도의 자국들

 

    ----------------

  *『버클리문학2016. Summer / vol.3 <신작시>에서

  * 김경년/ 1940년 서울 출생, 1967년 도미, 전 버클리대 한국어 교수, 버클리문학 편집위원, 시집 『달팽이가 그어 놓은 작은 점선』, 번역서 딕테(차학경 저), 윤동주 시전집, 김승희 시선집, 둔황의 사랑(윤후명 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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