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영숙_목숨 거는 날들의 비망록(발췌)/ 내 살던 뒤안에 : 정양

검지 정숙자 2016. 12. 7. 15:40

 

 

2016, 제8회 구상문학상특집|수상자 대표시 10편 중 1편

 

 

   내 살던 뒤안에

 

    정 양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풀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 사나운

  몰매 내리던 내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뭄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전문-

 

 

  ▶ 목숨 거는 날들의 비망록(발췌) _ 이영숙

  그의 첫 시집 『까마귀 떼』(1980)에 실린 위 시에서 어린 시절의 그는 "아이들의 팔매질"에 나무에서 떨어져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사라지던 구렁이에 자신을 온전히 투사한다. "눈 감은 틈"에 몰매는 내게로 쏟아진다. 그는 스스로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됨으로써 목숨을 건 피학을 감행하려던 것일까. '구렁이'처럼 '흙담을 끼고' 어디로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탄광파업철도파업대구폭동여순반란" 등의 사건들에 관여하다 "형무소로 끌려가서" "육이오" 때 "행방불명" 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빈 무덤」)로 인해 집으로는 이웃들의 돌이 날아들고, 그는 아이들의 "몽둥이"와 "돌팔매"에 쫓기기도 한다. "겁결에 뛰어든 굴 속에는/ 어둡고 으스스한 바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의 살기찬 목소리"에 질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문둥이가 살고 있다는 굴 속을/ 들켜도 좋은 소리로 마구/ 울부짖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는 한밤중"이 될 때까지 "이빨에 몰래 서걱거리는/ 흙냄새를 숨죽여 깨물"(「폐촌에서 3」)며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견디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에 그는 원죄의식 같은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 것은 '구렁이'처럼 자신도 '흙담을 끼고' 돌아나가 현실조건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어딘가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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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16-겨울호 <구상문학상 특집> 에서

  * 정양/ 1942년 전북 김제 출생, 1968년 《대한일보》시 부문, 1977년 《조선일보》평론 부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수수깡을 씹으며』『헛디디며 헛짚으며』외. 詩話集『동심의 신화』. 판소리 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 공편 『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판소리 단가』. 공역 『두보시의 이해』『두남문집 芝庄洞』외. 모악문학상, 백석문학상 등 수상.

  * 이영숙/ 1991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詩와 호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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