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낙도를 폐하며
우대식
사람에 의지하지 마라
이제 오십이 넘었으니
안빈의 도와 같은 것도 필요없다
안安도 그러하지만 빈貧도 모두 하찮다
당연히 그러할 것이니
자연으로 돌아갈 필요는 더욱 없다
고물상과 폐차장이 널려 있으면 어떠한가
걸어서 물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아스팔트를 뚫고 핀 들꽃 한 송이면
또 어떠한가
내 몸은
나도 잘 모르는 문명의 회로回路이다
한 손에는 파리채
한 손에는 담배를 꼬나물고
날것들이나 물리치면서 시를 생각하는 일
하루에 두 줄 정도 쓰는 일
사람에 의지하지 마라
눈곱 낀 눈으로
먼 태풍을 응시하다가
생각이 부산해질 때
발바닥에 무늬를 새겨넣을 뿐
그 족적足跡의 힘으로 천리도 가고 만리도 갈 뿐
-전문-
▶ 여행의 목적(발췌)_황정산
세속적인 욕망에 기대는 것도 허망하지만 그런 것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정신에 기대는 것도 또한 허망한 것임을 시인은 얘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거창한 가치가 아니라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문명의 회로"인 불안한 자신의 몸에 맡기는 일이다. 결국 여행의 목적은 바로 불안에 있고 그 불안을 몰고 오는 자유에 있다. 우대식 시인에게 시는 이 불안의 여정으로 자신의 몸을 "천리도 가고 만리도" 가게 만드는 "족적의 힘"인 셈이다.
----------------
*『미네르바』2016-겨울호 <신작소시집>에서
* 우대식/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설산 국경』등,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시에 죽고 시에 살다』등
* 황정산/ 대전대 교수, 1994년『창작과비평』으로 평론, 2001년 『현대시문학』으로 시 등단. 저서『주변에서 글쓰기』『작가론 김수영 총서』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폼페이를 가다/ 박분필 (0) | 2016.11.27 |
|---|---|
| 유성호_천진성을 옹호하는 역리(逆理)의 서정(발췌)/ 다보탑을 줍다 : 유안진 (0) | 2016.11.27 |
| 겨울철새 떼/ 김선호 (0) | 2016.11.25 |
| 에케케이리아Ekecheiria*/ 우원호 (0) | 2016.11.25 |
| 한용국_고통의 밀도와 시적 부력( 발췌)/ 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 : 정진혁 (0) | 2016.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