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한용국_고통의 밀도와 시적 부력( 발췌)/ 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 : 정진혁

검지 정숙자 2016. 11. 24. 14:00

 

 

    오른쪽 어깨에는 각이 살고 있다

 

    정진혁

 

 

  나는 어느 생의 방파제에서 떨어졌다

  실업이 자꾸 나를 밀었다

  어깨를 가만히 세우면 어긋난 각들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떨어진 어깨에 모난 말들이 터를 잡았다

 

  깨진 것들은 왜 각진 얼굴을 하는가

 

  수박은 박살이 나고 병은 깨지고 그해 여름도 산산히 부서졌다

  둥근 것들이 각이 되었다

 

  팔을 들었다 내릴 때마다 각들이 서로 찌르는 소리가 났다

  그동안 너무 오래 서성거렸다

 

  걸음걸이가 세모다 표정이 세모다

  몸이 변하면서 마음에도 세모가 자라기 시작했다

 

  실업은 질기고 캄캄했다

  밤마다 도처에 머물던 각들이

  일제히 어깨로 달려와 수런거렸다

 

  나는 말수가 적어졌고 대신 각들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떨어진 각도를 지우기 위해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나를 놓치고 시간은 까맸다

  죽은 숫자들이 우글거리는 달력을 떼어 부채질을 했다

  그해 여름의 날짜들이 떨어지며 각이 되었다

     -전문-

 

   고통의 밀도와 시적 부력浮力(발췌)_ 한용국(시인)

  시적 주체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를 회상하고 있다. 고통의 원인은 시에 따르면 실업인데, 그 기간은 꽤 오래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실업으로 인한 절망이 결국 시인을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내몰아 버렸다. 실업의 과정에서 혹은 실업의 결과로 그가 들은 말들은 "모난 말"들이었다. "모난 말"들은 결국 그의 몸에 날카로운 "각"으로 파고들었고, "그 해 여름"을 산산히 부서뜨리고 말았다. '둥긂'은 사라지고 '각'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그는 던져져 버렸다.

 

  그 속에서 또한 상처("각")에 동화되고 말았다. 몸이 주인이 아니라 상처가 주인이 되고 만 것이다. 상처가 주는 통증 '각'은 그에게 불면("밤마다 도처에 머물던 각들이/ 일제히 어깨로 달려와 수런거렸다")과 신경증("나는 말수가 적어졌고 대신 각들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을 유발하고 만다.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것은 자기를 잠시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떨어진 각도를 지우기 위해/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그는 오랫동안 고독하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았을 텐데, 거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놓치고 시간은 까맸다" 그는 상처의 고독한 응시를 통해 상처에서 살로 자신을 이동시킨 것이다. 상처가 아물면서 딱지가 앉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죽은 숫자들이 우글거리는 달력을 떼어 부채질을 했다") "그 해 여름의 날짜들"은 떨어지며 "각"이 되었지만 더 이상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 각들은 이제 그의 "오른쪽 어깨"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오른쪽 어깨는 상처/ 살이 함께 살아가는 몸의 자리인 것이다. 그 자리는 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잊고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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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6-겨울호 <젊은 시인들의 시 읽기>에서

  * 정진혁/ 2008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간잽이』『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 한용국/ 200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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