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모래알은 반짝/ 이현승

검지 정숙자 2016. 11. 23. 02:18

 

 

    모래알은 반짝

 

    이현승

 

 

  인정사정 없이 깨진 것들은 눈부시다

  인정사정 안 봐주고 부서뜨리는 파괴자들을 비웃는

  햇살은 지금 찬란하다

 

  부서지는 것들은 부서지는 것들의 노래로 챙챙

  햇볕은 지금 깨어지는 것쯤은 걱정 없지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니까

 

  부서지는 것들 파기된 것들은 모두 찬란하다

  도공들은 빚어 구운 그릇을 망치로 내려치고

  연인은 헤어지면서 사랑을 이해하고

  지도는 만들어지면서부터 틀리기 시작하고

  손깍지는 기도를 풀면서 완성된다

  탈영병들은 노래한다

  총성처럼 울려 퍼지는 사랑

 

  분해는 조립의 역순이라고 가르치지 않듯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의 노래만이 찬란하다

  그런데 깨진 유리병들은

  어디에 저렇게 많은 금들을 감추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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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16. 9-10월호 <시사사 초대석/이현승 시인이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시>에서

  * 이현승/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생활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