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라는, 개의 이름
박해람
마당은 녹슨 철조망에 갇혀 있고
철조망은 냄새도 없이 썩는다.
마당은 가장 낮은 곳의 넓이이고
천적의 식성으로 정원은 아름다웠다.
허송세월이라면 마당만 한 곳이 없겠으나 개의 등에는 이제야 꽃이 피었
다. 작약 꽃과 엉겅퀴, 개나리는 형량(形量)이 정해진 꽃. 개는 여러 명의 주
인이 있겠지만 끈, 끈은 봄엔 초록으로 철조망을 넘다가 가을엔 누렇게 마른
다.
막론하고 개는 줄기식물 과에 가깝다.
저녁을 먹고 난 개의 배같이 둥그런 마당, 대문 하나가 오래 열리지 않았을
뿐인데 천적들과 훼방들이 무성하다. 개가 몸을 털어댈 때마다 개나리와 살
구꽃이 떨어졌다.
겨울, 누렇게 털이 말라죽은 개를 본 적 있다. 밥을 먹지 못한 개는 틈으로
번져나간다. 세상의 풀씨들이란 개의 털에서 쏟아졌을 것이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과 마당은 천적 사이였을까 여럿이 죽고 태어나는
동안 이름들은 제각각 나이가 달랐다. 사람의 발자국은 잡초들의 천적, 마당
은 사람의 말투를 잊으려 우거졌다. 살이 부러진 소나기가 어정쩡하게 버려
졌으며 투명을 비워낸 술병들은 파랗게 물들었다.
오랫동안 짖지 않은 대문은 귀가 퇴화되었다.
왜 마당들은 이름이 없을까.
가끔 관리인이 오면 마루 밑 신발 속에선
열쇠가 생긴다.
그때 마당은 우거진 털로 사람 주위를 반갑게 뛰어오른다.
-전문-
▶ 추천사유_김은우(시인)
개는 주로 마당에서 하루를 보낸다. 땅을 파고 먼지를 피우고 무리지어 노는 닭들을 쫓아다니다가 싫증이 나면 벌러덩 누워 한숨 자고 일어난다. 누군가 대문 앞을 지나는 이가 있으면 큰 소리로 짖어대고 배가 고프면 주는 밥이나 먹고 주인이 나타나면 킁킁거리며 매달리는 것이 종일 개가 하는 일일 것이다.// 박해람 시인의 시 「마당이라는, 개의 이름」은 발상이 참 재미있다. 이 시에서 개가 마당이고 마당이 개여서 마당과 개가 한 몸인 셈이다. 철조망에 갇힌 마당과 개는 꼼짝없이 묶여버린 신세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개는 철조망을 넘어가려 몸부림치다 결국엔 마당에 안주해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집을 지킨다. 철조망에 갇힌 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마당에 납작 엎드려 낮잠을 자거나 어슬렁거리며 마당을 한 바퀴 도는 것뿐 철조망에 갇힌 채 붙박인 마당과는 같은 운명인 것이다.// 시인은 "개가 줄기식물에 가깝다"고 한다. 줄기식물이 무엇인가, 땅 위로 뻗어가면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넝쿨을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 아니겠는가?// "왜 마당들은 이름이 없을까" 마당과 개가 늘 함께 있는 풍경, 개의 이름은 곧 마당이 되는 것. "오랫동안 짖지 않은 대문은 귀가 퇴화되었다"로 미루어보아 이 집은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이 떠난 모양이다. 주인이 떠난 뒤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모습을 상상하니 쓸쓸한 느낌이 든다.// "가끔 관리인이 오면 마루 밑 신발 속에선 열쇠가 생긴다. 그때 마당은 우거진 털로 사람 주위를 반갑게 뛰어오른다"는 구절을 볼 때 마당도 개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과 자연이 기이하게 한 몸이 되는 이 시에서 박해람 시인의 정교한 관찰력과 묘사력이 돋보인다. 마당과 개의 공통점을 끄집어내어 시인의 특유의 묘사로 그려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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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6-겨울호 <제8회 시산맥작품상 후보>에서
* 박해람/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백리를 기다리는 말』
* 김은우/ 1999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바람도서관』『길달리기새의 발바닥을 씻겨주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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