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랍의 세계
정채원
우린 더 이상 뜨거워지면 안 돼
전신이 흐물흐물해지다
코도 귀도 사라지고
팔다리까지 녹아내려
서로의 문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될 거야
눈에서 떨어지는 촛농에
발등이 부어올라
온종일 문쪽만 바라보게 될 거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우고 통증을 잠시 잊게 해주는
기도서의 모서리가 녹는 동안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흥건히 고인 불안도 돌같이 굳혀
종량제 봉투에 담아 암매장하면 된다고
부부젤라처럼 불어대는 소리들
귀를 틀어막으며 창밖을 내다본다
목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녹아 없어질 거야
오늘은 손가락 두 마디를 더 녹여
창유리에라도 메모를 남기자
혈서처럼 유언처럼
암매장되는 일기장처럼
신을 본뜬 밀랍인형에
끈적이며 녹아내리는 볼을 비벼댄다
점점 짧아지는 심지로
반쯤 뭉그러진 입술로
함께 녹아가는 손목을 밀봉한다
-전문-
▶ 그러나 형형색색 떠오르는 것들에 관하여(발췌)_ 박상수(시인, 평론가)
시적 화자는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흥건히 고인 불안도 돌같이 굳혀/ 종량제 봉투에 담아 암매장하면 된다고/ 부부젤라처럼 불어대는 소리들/ 귀를 틀어막으며"괴로워한다. 상투화된 종교적 가르침이란 삶의 실제적 감각을 억압하고 우리의 내면을 더욱 황폐하게 만드는데 시적 화자는 여기에 노골적으로 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강렬한 공격성을 스스로에게 돌리면서 "목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녹아 없어질 거야/ 오늘은 손가락 두 마디를 더 녹여/ 창유리에 메모를 남기자/ 혈서처럼 유서처럼/ 암매장되는 일기장처럼"과 같은 극단에 이르는 자기파괴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맹렬한 에너지와 굴절된 파괴적 상상력은 정채원 시의 중요한 장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 볼 것은 정채원의 시적 화자가 비교적 도덕의식이 강한 편이어서 갑작스러운 도약의 계기나 외부 구원의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고 이 황폐함과 균열을 고스란히 자기의 문제로 수용한다는 데에 있다. 즉 정채원의 시적 화자는 고통과 함께 '과연 내 삶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쩔 수 없이, 늘 당도하지만, 이때도 타자와 세계, 혹은 자신의 커다란 변화를 극적으로 촉구한다기보다는 힘을 모아 모든 일을 차분히 인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놀랄만한 균형감각이 죽음충동에 시달리는 자신이나, 다른 세상을 향한 파괴적 열망에 달뜬 자신을 적절한 상태로 제어하는 쪽으로 작동한다고 말해야 옳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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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6-겨울호 <시산맥이 찾아가는 시인>에서
* 정채원/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
* 박상수/ 2000년 『동서문학』으로 시, 2004년 『현대문학』으로 평론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숙녀의 기분』, 평론집 『귀족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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