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유희경
나는 엔진 소리를 듣다가 커다란 회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상념
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누군가 벨을 눌렀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노을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엔진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였으나 회전
은 아주 느리거나 멈춰버린 듯했고 중심은 보이지도 짐작되지도 않았다
나는 사랑에 빠져 있었다 여름이 끝나간다 세종로에서 사직로 쪽으로 꺾
여 들어가는 그쯤의 일이다 곧 밤이 시작될 것이었고 누군가는 늦었고 누
군가는 즐거웠고 누군가는 잊혀갈 그런 밤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 관심
도 없었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더는 여름이 아니었다 나는 소년도 아니었
다 나는 사랑에 빠져 있었던 나를 생각했고 여름의 시작을 떠올렸고 그리
운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깊은 자국을 남기고 나는 중심으로부터 아주
약간 더 멀어진 것 같았다
-전문-
▶ 슬픔을 '웃는' 방법(발췌)_류수연
시인에게 부재는 늘 궤도에서의 일탈을 자각하게 하는 공포였다. 마땅히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해야 할 무엇(아버지, 가족, 사랑 등)의 부재는 상처이면서 결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조금 더 따뜻한"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운 듯하다. 그것을 위해 때로 궤도를 벗어나야만 함을, 그는 알게 되었다. 지옥으로의 한 걸음을 긍정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유희경이 또 다시 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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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16-10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에서
* 유희경/ 2008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 류수연/ 문학평론가, 2013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현재 인하대락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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