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장석주_"처남들과 처제들"의 세계에서(발췌)/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 베르돌트 브레히트

검지 정숙자 2016. 11. 8. 15:30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베르돌트 브레히트(1898~1956, 58세)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라마에서 건축 노동자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카이사르는 갈이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펠리페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당하자 울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이외에는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 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댔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전문-

 

  "처남들과 처제들"의 세계에서(발췌)_ 장석주

  우리는 이 '사실'과 '의문'들로 짜여진 세계에서 왕이나 영웅, 이를테면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나 로마의 황제들, 펠리페 왕이나 프리드리히 2세가 아니다. 그들은 몸을 가졌지만 몸을 향해 있는 게 아니라 몸에 등을 돌리고 있는 권력-몸이다. 다시 말해 상징계 안에서 신적 존재로 성화(聖化)된 몸이다. 반면 우리는 차라리 테베를 건설한 노동자, 만리장성을 쌓은 벽돌공, 로마제국의 개선문을 세우는 데 동원된 시민들, 노예, 취사병들이다. 우리는 손을 쓰고 숨을 헐떡이며 땀 흘리는 몸들이다. '나'는 실존에 자리를 제공하는 몸이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왕과 장군들이 향연을 벌일 때 우리는 그 뒤편에서 쓸쓸하게 서 있는 그림자 존재들이다. 역사의 페이지마다 나오는 "승리의 향연"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브레히트는 단지 '영웅신화'를 부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영웅신화'에 가려진 존재들, 즉, 돌덩이를 나르고,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둔 그림자 존재들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역사 주제는 손의 노동, 몸의 노동에 기꺼이 나섰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존재한 것이 없었던 것처럼 역사에서 지워진 채 그림자 존재로 전락한다. 시인은 바로 이들을 호명하면서 이들의 업적을 되살려내라고 청원한다. 브레히트의 시는 "그 많은 사실들"의 복구를 청원하는 노래이자 "그 많은 의문들"을 제기하고 실어나르는 노래다.

 

  * 베르돌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광규 옮김, 한마당,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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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 』2016-11월호 <권두시론>에서

 * 장석주/ 197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1979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몽해항로』외, 평론집『시적 순간』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