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거울 속을 본다
김종태
깨진 거울 속의 무수한 길들은 본다
가늘게 갈라진 몸이 정렬하는 구역마다
소인은 찍혔으나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같이
은빛 빛깔의 파편들이 서로를 잡아당긴다
이름 없이 다가와 휴지 조각으로 사라지는
차가운, 찌르는, 에이는, 뜨거운
아예 스스로의 형체를 잃는 맨몸의 주소들이 있다
가을 늦은 오후, 홀로 깨진 거울 앞에 서면
겨울나무 저녁 이파리처럼 사라진 몸들이
내 누추한 정신 구석구석에서 바람을 일으킨다
마실 간 지 십 년 된 아버지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한때 좋았던 애인들은 귓전에서 소곤거린다
환상지증후군 환자의 하소연같이
오! 새 팔과 다리가 간질간질 돋아나는구나
실낱같은 금으로 서로 다른 저녁의 어둠이 온다
뇌수까지 엉키어드는 유리 거미줄
얼기설기 이어지고 또 끊어진 데로 달그림자 비친다
갱지처럼 구겨져 더 큰 통증이 살갗에 생생하다
분명 거울 속에는 나밖에 없다, 아니 아니
산산이 깨어진 내 몸의 순간 속에는 거울밖에 없다
저 금의 주름이 온몸을 덮어갈 때도
그건 진정 내 팔과 내 발목이 아닐 것이다
지나간 시간들은 반송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아니, 그 반송지에도 나는 없을 것이다
-전문-
▶ 깨진 거울,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을 향하여(발췌) _ 고봉준
'거울'이란 상상계, 즉 강력한 자기동일성의 세계를 상징한다. 동시에 그것은 강력한 나르시시즘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깨진 거울'은 이러한 자기동일성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시세계의 변화가 '깨진 거울'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깨진 거울'의 세계는 파편적이어서 그런데 인용 시에서 화자는 "서로를 잡아당"길지언정 유기적인 전체성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시에는, 특히 깨진 거울 속의 장면에는 두 번째 시집(『오각의 방』, 2013)에 포함된 결정적인 이미지들이 파편처럼 흩뿌려진 방식으로 등장한다. '마실 간 지 십 년 된 아버지' '한때 좋았던 애인들' '환상지증후군 환자' 등이 그것들이다. 화자는 지금 깨진 거울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장면들을 발견하고 있다. 하지만 화자는 "그건 진정 내 팔과 내 발목이 아닐 것이다 / 지나간 시간들은 반송될지도 모르겠지만 / 아니 아니, 그 반송지에도 나는 없을 것이다"라는 진술에서 암시되듯이 그 파편들을 자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것은 상상적인 동일시를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설령 시간의 법칙을 거슬러 과거-시간이 다시 도래한다고 할지라도 "반송지에 나"가 없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이는 과거의 반복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유기적인 전체성으로서의 '나'는 물론 과거와 현재의, 나아가 매 순간의 시간들이 불연속일 수밖에 없음을 수락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수락에 이르기까지 시인-화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수락이 그의 시를 자기동일성 바깥으로 이끌었다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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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표현』2016-11월호 <이 달의 시인>에서
* 고봉준/ 2000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 『반대자의 윤리』『비인칭적인 것』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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