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낯선 허기
정온유
영혼이 나에게서 점…점…점…멀어진다
내 몸은 작아져서 붙잡을 수가 없다
캡슐 안 넓은 공간이 아득하다 낯. 설. 다
매일매일 마시던 공기가 처음 같고
매일 앉던 강의실 내 자리가 겉돌고
내 집 앞 매일 걸었던 도로가 어색하다
비워진 골목들이 부스스 잠을 꺤다
골을 타고 흘러온 문장들이 엉킨다
백지로 지워버리는 행위를 반복한다
양푼 밥을 비비고 허겁지겁 먹는다
빈 그릇 안으로 햇살이 내려앉고
밀랍의 독한 허기가 잠허리 배고 있다
-전문 (『다층』, 2016, 가을)
▶ 완미한 정형미학의 심층과 이면(발췌) _ 유성호(柳成浩)
정온유 미학의 핵심은 가정 근원적인 질서에 대한 갈망과 추구, 그리고 여러 인생론적 세목들을 그 안에서 파생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 세목이란, 삶의 근원적 이법에 대한 곡진한 깨달음을 거쳐서, 그리고 시간의 깊이에 이르러서, 궁극적 존재 전환의 꿈을 노래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어간다. 영혼이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느낌, 몸이 작아져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느낌, 그것은 "낯선 허기"에 틀림없다. 아득하고 낯선 그 "허기"는 일상적으로 친숙하던 "공기"며 "강의실 내 자리"며 "내 집 앞 매일 걸었던 도로"조차 어색하게끔 한다. 이 순간은 "골을 타고 흘러온 문장들"마저 백지로 지워져가게 하는데, 그때 시인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비워진 그릇 안으로 햇살이 내려앉는 순간을 목도한다. "밀랍의 독한 허기"처럼 찾아온 순간이 잠시, 반짝, 시인의아득하고 낯선 존재 성찰의 순간을 가져온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서정시는 지난 시간에 대한 경험을 기억하고 구성하는 양식적 특성을 지닌다. 그만큼 서정시는 다양한 기억의 양상을 다루면서, 우리로 하여금 오랜 기억의 원리를 따라 삶의 근원에 대한 상상적 경험을 치르게 한다. 특별히 현대시조는, 스케일이 큰 우주적 상상력으로부터 소소하고 미세한 사물들의 움직임에 이르는 다양한 시적 경험을 불가피한 정형의 울타리 안에 담음으로써 이러한 서정의 원리를 한껏 충족한다. 또한 이른바 '충만한 현재형'에서 구축되는 순간적 정서를 두루 경험하게끔 한다. 그 경험과 정서가 정형 안에 잘 갈무리됨으로써, 우리는 해체 지향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잘 짜여진 고전적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의 원초적이고 미분화된 정서와 통합적인 삶의 이치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정형이라는 것이, 자유로운 시상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애물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을 통해서만 미학적 성취를 가능케 하는 불가피한 '존재의 집'임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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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2016-11월호 <이달의 문제작>에서
*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 출생,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평론집으로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침묵의 파문』『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등. 김달진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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