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스 톤 네크론
장석원
소용돌이에 빠진 내가 나를 구출하기 위해 왼팔로 오른팔을 끌어당긴다
엷은 먼지의 머리칼
부풀어 오르는 저녁의 하악
우리가 도달한 반환점
죽은 자들이 꽃을 밟는다
능지된 검은 꽃 안에
잠드는 아이들의 차가운 이야기
고통이 부족한 저녁이다
파도가 사람을 건드린다 사람은 거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은 도
래하지 않는다 당신을 믿지 못하여 사랑을 잃고 당신이 버린 우리와 버려진
우리의 고통 때문에 최후의 죄와 벌이 완성된다 불꽃이 타오른다
노예였던 우리의 주인과 제자였던 우리의 스승 우리는 한 몸을 지녔으나
영혼이 두 동강 난 비천한 쓰레기인데 당신이 더럽혀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로부터 영속하는 증오와 사랑이 우
리를 격파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당신의 복막을 찢고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후의 혁명은 거짓이다
너희의 무거운 죄를 보라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에겐 절망뿐이었으리 참회
와 증오가 죄진 육체를 둘로 찢은 후 나의 젖을 먹고 자란 아들이 나를 죽이
려고 하니 아들이 바로 뱀이었으니 모두가 파멸한 후 너희의 죄는 나의 것이
니라 옥에서 손발을 자른 채 벌을 받아야 하는 자 나이니 너희가 늙어 작아질
때 너희의 육체 붕괴되어 모래가 될 때 너희의 영혼 부서질 때 죽음이 너희의
영욱을 씹을 때 내가 너희를 껴안을 것이니 너희를 만들고 키워 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흑이 들어찼으니 이제 나는 되살아나느니라 나를 공양하는 자
생명으로 빚어 새로 태어나게 할 것이니 내가 흘린 눈물이 너희의 육신을 적
시리라
그들은 죽지 않았다 우리 영혼에 잠입하여 우리의 몸이 되었다 피에 녹아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들 우리가 흘린 피 땅을 적시고 그 피에서 피어난 꽃
다시 붉어지는데 우리는 그곳에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묻었다
- 시집『리듬』(파란, 2016)
▶ 메이데이, '새로 시작하는 사랑의 노래'가 있어(발췌) _ 김효은
신에게도 인간 세계에도 "고통이 부족한 저녁"이었을까. 폭주하는 증기기관차의 열기를 식히기 위한 "아이들의 차가운 이야기", 차가운 목숨들로 더럽고 추악하고 가열된 세상을 정화하고 냉각시키기 위해 그들의 순교가 필요했을까. 어떠한 해석도 질문도 답변도 추측도 변명이 되어버린다. 모든 문답은 어리석다. 4월의 봄은 수장당한 지 오래. 4월은 영원히 잠들 수 없는 파란(波瀾)의 계절이 되어 암해(暗海) 속에 갇혀 있다. "능지된 검은 꽃"들의 비명이 아직까지도 아니 영원히 시퍼렇게 메아리쳐 오는 절명과 절망 속에서 생존자이자 가해자인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우리가 더욱 지독히 서로 사랑한다면, "아나스타시스톤 네크론"을 주문처럼 외운다면, 그들이 예수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 "당신이 버린 우리와 버려진 우리의 고통 때문에 최후의 죄와 벌이 완성된다"면 그렇게라도 위로가 된다면 예수의 자리에 그들의 꽃을, 노란 리본을 십자가처럼 매어단다면 그들에게 그리고 남은 우리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단죄가 될 수 있을까. 순결한 어린 양들을 제단에 바치고 활활 불태우고 제사 지낸 우리는 이제라도 깨끗하게 정화된 세상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흰 뼈의 무더기"를 과잉 지불했지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하얀 포말을 일으켜 밀려오는 죄의식의 재만이 눈부시게 흴 뿐, 세상은 여전히 검디검은 암흑 속이다. "이후의 혁명은 거짓"이 되어버린 세상에 우리는 어떤 부표를 안고 표류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세상 전체가 블랙박스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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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16-10월호 <이달의 시집-서평>에서
* 김효은/ 문학평론가, 2010년 『시에』로 등단,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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