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보약이 되는 수박/ 한석근

검지 정숙자 2016. 11. 1. 22:29

 

 

    보약이 되는 수박

 

    한석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혀 주고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 수박이다.

  수박은 전체의 95%가 수분이며, 과일이 아닌 채소에 속한다. 채소에 속하는 것은 수밖뿐만 아니고, 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참외, 호박 등이 모두 채소에 속하는 것들이다. 대개 다년생으로 자라는 나무에서 수확하는 것은 과일에 속하지만, 1년밖에 살지 못하는 식물의 열매는 채소로 분류한다. 채소에도 열매채소와 뿌리채소로 나뉜다. 고구마, 감자, 땋콩류는 뿌리채소인데, 고구마는 피근류이고, 감자는 피경류이고, 땅콩은 열매류에 속한다. 즉, 고구마는 땅속에서 뿌리가 굵은 것이고, 감자는 땅속줄기에서 커진 것이다.

  수박만큼 갈증과 더위를 쫓는 데 그만한 채소나 과일은 없다. 갈증을 해소시켜 몸 안의 수분을 보충해 주며, 피로한 몸을 흡수된 에너지로 빠르게 회복시켜 준다. 특히 포도당과 과당이 풍부하다. 또한 시트롤린이란 아미노산이 있어, 필요 없는 몸속의 단백질이 오줌으로 걸러지도록 촉진작용을 증진시킨다.

  수박이 속살이 붉은 빛을 띠는 것은 양양소인 리코펜이란 물질이 있어서이고, 리코펜은 심장을 튼튼하게 하며, 각종 암 발생을 저해시켜준다. 이뿐만이 아니라, 흰 껍질은 비타민C가 풍부하다. 씨에도 단백질, 지방, 당질, 무기질, 비타민B같은 우리 몸에 좋은 여러 가지 영양소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하면 씹어 먹는 것이 좋다.

  수박은 원래 아프리카가 원산지이고, 고대 이집트시대에도 재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서역을 통해 중국 송나라와 고려에 전해졌고, 조선 중기 때는 허균이 팔도 명물 토산품과 별미를 소개한 '도문대작'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의 내용에는 '고려를 배신하고, 원나라에 귀화해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가 처음으로 개성에 수박을 심었다.'고 했다. 충렬왕 때 사람인 홍다구는 원나라 감독관으로 파견되어 머무는 동안 많은 민폐와 행패를 부렸던 사람이다.

  강릉의 신사임당(연산군 10년; 1504년)은 초충도(草蟲圖)를 그렸는데, 수박과 곤충, 벌레, 쥐 등이 묘사되어 있고, 쥐가 큰 수박을 갉아먹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숙종 2년(1676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 서과투서(西瓜偸鼠)는 '쥐가 수박을 훔쳐 먹는다'는 뜻인데, 수박의 한자 이름이 서과(西瓜)이다. 이 시기에도 수박은 많이 애용된 줄기채소의 열매였다.

  수박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비대해지거나 체중을 늘리지 않게 한다. 콜라 한 잔에 100kcal인 반면, 수박은 100g당 20~30kcal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또한 수박이 독주의 해독 작용에도 좋아 오래 전부터 룸살롱에서 술안주인 화채로 애용되어 왔다. 과음한 뒷날 아침, 숙취해소로 수박을 믹서에 갈아 한 그릇 마시고 나면 신묘하게도 빠른 회복을 보게 된다.

  이런 수박이 쉽게 농부의 손에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수박은 힘든 노력이 있어야 하고, 기술적인 재배를 통해서 얻어진다. 수박은 '포도접을 붙이는 방법'으로 박과 호박은 뿌리가 건실하기 때문에 산머루 뿌리에 포도접을 붙이듯이 수박순을 접붙인다. 병충해에 강한 박과 호박의 뿌리는 건강하게 영양분을 흡수해 큰 열매를 맺게 하여 질좋은 수박을 맺게 한다.

  이렇게 맛있고 굵은 수박을 수확하기 위해 줄기마다 돋는 새 줄기를 모두 잘라야 하고, 많이 붙은 열매를 솎아서 하나의 열매로 영양소가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한때는 씨 없는 수박이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다. 처음 개발한 사람은 평생 동래원예고등학교에서 식물 연구에 몸을 바친 우장춘 박사에 의해서였다.

  지금은 그 후학들이 농촌지도소를 통해 농가에 보급되어 농민들이 쉽게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수박에 씨를 없애는 방법은 수박싹이 나올 때 콜리친이란 물질을 흡수시키면, 염색채의 수가 변하여 씨를 못 만들게 작용한다. 지금은 껍질이 얇은 수박도 개발되어 칼로 깎아 먹을 수 있고, 속알이 노란 수박, 껍질이 검은 수박도 식탁에 오르고 있는 세상이다.

  올해같이 무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철에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은 나른하고 맥이 풀려 꼼짝하기도 귀찮은 한낮이다. 이럴 때일수록 보약이 되는 시원한 수박 속살을 덥석 한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을 더욱 간절하게 느끼는 한낮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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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16-11월<수필>에서

  * 한석근/ 198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귀신고래와 명포수』『봄버들 연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