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희망, 그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마이웨이」
윤향기(시인)
My Way : 프랭크 시나트라 (노래)
이제 끝이 가까워졌네. 나는 인생의 종막을 향하고 있다네
벗이여, 나는 여기서 분명히 말하겠네
확신을 갖고 나의 경우를 얘기한다네
나는 충실한 인생을 살아왔네. 모든 하이웨이를 여행도 했고
아니, 그 이상으로 내 인생을 걸었다네
조금은 후회도 남아 있지만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네
나는 해야 할 일을 모두 해냈다네
달아나지 않고 해낸 거라네
적혀 있는 코스는 모두 시험했고,
옆길에도 주의 깊게 발을 들여놓았다네
아니, 그 이상으로 내 인생을 걸었다네
그렇지, 확실히 당신도 알고 있는 그런 때도 있었고
깨물어 먹을 수 없을 정도의 것에 달라붙은 적도 있었다네
모든 것에 정면으로 맞서고 몸을 피하지 않았다네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다네
나는 사랑하고, 웃고, 울기도 했고, 충족한 기쁨도,
잃는 것의 억울함도 알고 왔다네
그리고 지금 눈물이 마름에 따라 모든 것이 즐겁게 여겨지네
그리고 나는 부끄러운 짓은 안 했다고 말하겠네
그런 것은 나는 할 수 없다네.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네
인간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손에 넣은 것이 무슨 소용이 된다는 건가
자기의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네
그렇지 않으면 없는 거나 다름 없으니
세상에 나타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느끼는 것을 말하는 거라네
이런 이유로 제법 손해도 보았지만,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네
-end-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능인선원 법당에서였다. 강의가 끝난 후 지광 스님의 선물 공세였다. 마지막 인생길을 돌아보는 남자가 가진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확신에 차서 힘차게 부르는 멋진 곡이다. 아마 무의미하게 살고 있던 30세 때 자신의 길을 찾고 싶어 했던 나의 보이지 않던 무의식이 꼭 필요로 했던 단어라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된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하여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강제규 감독이 <마이 웨이>로 2011년을 완성했다.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마이 웨이>의 경우 다큐멘터리가 먼저였다. 2005년 12월 18일 방송 SBS의 <노르망디의 코리안> 다큐멘터리는 1930년대 후반, 한 조선인이 중국에서 소련으로 넘어갔다가 독일로 향한 뒤. 노르망디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실화가 소재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이 되어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의 남자 김준식!
인간은 길 위의 존재다. 매일 선택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생을 선택해 본 적이 없다. 1944년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독일군 포로 중 유일한 동양인을 발견하게 된다. 대화가 통하지 않자 그는 미국 정보부대로 넘겨졌으며 그곳에서 자신의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1938년 경성. <마이 웨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거대한 역사의 파고에 맡겨진 실사적인 담론을 강 감독은 김준식(장동건)과 타츠오(오다기리 조)라는 캐릭터를 통해 조선과 일제를 대표하는 서브 플롯을 엮어 낸다. 노르망디 전선의 코리안을 인력거를 끄는 마라토너와 결합시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한 장의 사진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마라토너와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에 사로잡힌 일본인 청년과의 동행을 선뜻 맡은 것이다.
나라를 잃은 힘없는 조선 아이와 지배자인 일본 아이가 주인공이다. 다츠오가 엘리트 교육과 정규 마라톤 레슨을 받는 동안 한 집안의 가장인 준식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인력거를 끈다.
손기정 선구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몇 년 후 두 주인공은 조선과 일본을 대표하는 마라톤 선수로서 대회에 참가한다.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조선 청년 준식과 일본 최고의 마라톤 대표선수 다츠오. 준식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만 일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실격을 선언하고 다츠오에게 우승자로 트로피를 안겨 준다. 종대를 비롯한 조선 청년들이 이에 격분하여 난동을 일으킨다. 그러던 어느 날, 준식을 비롯한 조선 청년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일본군에게 강제 징집되어 만주국 관동군으로 끌려간다. 1년 후, 일본군 대위가 된 다츠오가 준식이 있는 부대의 장교로 부임하면서 운명적인 재회는 시작된다.
"배고팠지?"라고 한 번도 위로받아 본 적 없이 배고픔과 폭력으로 피범벅이 되면서도 묵묵히 마라톤 연습에 매진하는 준식. 이러한 시대에 개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축소되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도록 강요받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지 않는 준식. 그는 다츠오를 좋은 경쟁 대상자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 다츠오는 준식을 오직 적으로만 대적하며 사사건건 준식이 불리하도록 고의적으로 일을 꾸민다.
시대의 아픈 사건을 수직관계의 고리로 잇는 어릴 적 경성에서의 주인집 아들과 집사 아들, 일본군 장교와 졸개의 만남이 아닌, 소련군 포로로서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서야 드디어 동등한 포로 동료로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시절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파란 눈동자들 속에 낀 동양인, 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노르망디에 이르는 12,000Km의 전쟁을 겪는다.
이 영화의 몇 가지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매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서의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적인 준식의 휴머니티에서 오는 지루함과 불편함이 있었다면 호모 비오랑스(Homo Violence)적인 다츠오는 변모되는 새로운 인간상으로 관객을 몰입시켰다는 점이다. 준식의 휴머니티 항상성은 그가 포로로 잡은 중국인 저격수 쉬라이가 고통받고 있을 때, 그녀의 가장 소중한 기억인 가족사진 수첩을 찾아줄 때, 그녀를 탈출시키는 장면에서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폭력성…… 내재적일까? 환경의 산물일까?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에 이미 파괴적 본성인 '타나토스'라는 죽음 본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파괴해 무(無)로 되돌리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면 프랑스 철학자 로제 다둔은 아예 폭력적 인간이란 뜻의 '호모 비오랑스'라는 표현까지 제기했을까?
2014년 2월 어느 날이었다.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노예 12년>을 관함할 때였다. 백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 노예들을 차례로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인간 열매 위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이상한 열매」가 눈물처럼 쏟아질 때 <마이 웨이> 속 준식이 눈 내리는 허공에 고드럼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플레시백 장면이 내 동공을 덮쳐왔다. 아벨 미어로폴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잠시 듣고 가자.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리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검은 몸뚱이가 남풍을 받아 건들거리네
포플러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열매
아름다운 남부의 전원 풍경이여
튀어나온 눈과 찌그러진 입술
매그놀리아 향기는 달콤하고 신선한데
어디선가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
이곳에 까마귀가 뜯어먹을 열매가 있네
비를 맞고 바람을 삼키면
이상하고 슬픈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지네
-end-
카메라 풀숏의 잔혹한 힘으로 나무에 매달린 이상한 흑인 열매가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세상도 보았다. 흑인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견인하는 이 노래에 3도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당신의 목도 무감각해지고 있죠? 한 사람의 기억이 모두의 과거가 되기까지 더 이상 이런 분노는 생기지 않겠지만, 정말 전쟁은 안 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마이 웨이'가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인생을 노래했다면 폐쇄적이고 불합리한 폭력 문화의 상징인 <마이 웨이>는 우정을 소비한다. 감독이 의도한 어떤 신몀, 치밀한 계산,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방어기제로 가더라도 새로운 길은 새롭게 열리기 마련이다.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기록될, 현지에서 실재 모델과 같은 무기들로 재현한 노르망디 전투 장면은 제6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스페셜 부문에서 초청장을 거머쥐게 하였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그 남자 김준식은 『그리스인 조르바』속 대사처럼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 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고 간신히 읊조린다. 그 긴 고통의 테러 속에서도 영혼의 근육을 튼실하게 키워 내며 충만한 삶을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어. 그러나 난 모든 길을 다녀봤어. 후회라~ 많지! 하지만 난 내게 주어진 것을 했을 뿐 그것을 포기 않고 끝까지 해냈어. 예외는 없었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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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에게 영화가 전하는 당신 이야기『나는 타인이다』에서/ 2016.7.20. <연인M&B>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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