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장르의 책이다
전승환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른 만큼 책의 장르도 수없이 다양하다. 그래서 여러 장르의 책을 두루 섭렵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쉽게 친해지듯,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파고들게 되니까.
가끔 지인의 부탁으로 생소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수년이 흘러도 내 손으로는 직접 찾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종류의 책들 말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역사'라든가 '인디언은 왜 분장을 했는가'처럼 내 관심사가 아닌 주제를 다룬 책들. 어찌 되었든 부탁을 받았으니 좋든 싫든 읽고 난 뒤 느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어 내려간다. 한 장을 이해하는 데만도 몇 분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잘 소화되지도 않는 글을 꾸역꾸역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 눈길을 끄는 구절이 몇 개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마침표에서 눈을 떼고 난 뒤에는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진다.
나는 가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나와는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종종 생기는 일이다. 분명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사람도 이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온다. 공통점을 찾는 순간, 그 사람과 나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 만난 친구처럼 느껴진다. 또 그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언제나 배울 점이 있다.
책도 비슷하다. 낯설게 느껴지는 책도 막상 읽다 보면, 단 한 줄이라도 배울 수 있는 구절이 있고 영감을 주는 단어가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당신이라는 사람, 한번 읽어 내려가 보자'라는 마음만 갖는다면, 적어도 알게 모르게 품고 있던 상대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장르의 '책'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작가로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책이 없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읽는다는 것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책과 사람
공통된 의미를 지닌 위대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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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어주는 남자의 토닥토닥 에세이『나에게 고맙다』에서/ 2016.6.22. 초판 1쇄 발행/ 2016.10.5. 초판 49쇄 발행 <(주)백도씨> 펴냄
* 전승환(필명: 전레오)/ 북 테라피스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다양한 채널에서「책 읽어주는 남자」로 매주 100만 명이 넘는 독자에게 아름다운 글과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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