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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인의 시와 고령 시대의 시/ 윤의섭

검지 정숙자 2016. 10. 30. 23:59

 

 

    20대 시인의 시와 고령 시대의 시

 

    윤의섭

 

 

  1. 현대사회에서 시인의 나이란?

  나이가 30대에서 50대 정도인 분들은 어쩌면 이번 기획특집의 제목에 들어 있는 '20대'와 '고령'이라는 단어를 보고서는 자신과 무관한 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30대에서 50대 나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지나간 20대와 느리게 올 것만 같은 고령 시대는 좀 동떨어져 있는 시대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20대를 거쳐 50대에 이르는 것이고 건강히 살아있다면 60대를 넘어 고령의 나이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 20대 시인의 시와 고령 시대의 시를 양극화하여 대별한 것일까. 이 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풀어가다 보면 현대 한국시의 전반적인 경향과 양태를 파악해야 하는 어려운 난제에 부딪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더  많은 시간과 분량이 요구되는 부분은 살짝 피하고 조금은 개괄적으로 논지를 펼치고자 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이다. 즉 노인이 많은 사회인 것이다.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하는 노인의 나이가 65세 이상인데 한국 사회는 2000년대에 이르러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인구 전체의 7%를 넘어섰으므로 이 때문에 한국의 현대를 노인이 많은 고령 시대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서명숙, 『노인연구』, 교문사, 1993과 이현정, 『한국 현대 노년시 연구 시론』, 『한국시학연구』제45호, 한국시학회, 2016 참조.)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65세 이상의 노년 시인도 많을 것이다.(65세 이상의 '노인 시인'을 '노년 시인'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청년', '장년', '중년' 등 다른 나이 대에 대한 명칭과 대비하여 여러 함의를 갖고 있는 '노인'보다 '노년'이 더 적당한 명칭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 20대의 나이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라면 노년 시인일 텐데 우리 시단에는 그 이전에 등단한 현역 시인도 다수 있고,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현재 나이가 65세 이상인 시인도 있을 것이다. 한 예로 1960년에 등단하여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진규 시인은 1939년 생으로 78세이다. 이수익 시인은 1942년 생으로 75세인데 1963년에 등단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최라영,『현대시 동인의 시세계』, 예옥, 2006 참조.) 이러한 고령의 시인은 한국시사의 흐름을 이끌어온 주역들이다. 그리고 현재 발표되고 있는 이들의 시는 고령 시대 시의 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말하는 '고령 시대의 시'란 65세 이상인 노년 시인의 시를 포함하여 고령 시대라는 사회적 현상과 관련된 시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고령화 시대에, 노년 시인의 시와 고령 시대의 특성을 담고 있는 시 역시 이제 특별한 관심 사안으로 묶어 살펴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인다. 더구나 '고령 시대의 시'는 갈수록 양적이 비중이 늘 것이고,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언젠가는 노년 시인이 전제 시인의 절반을 넘어서는 날도 올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한국시의 경향도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한편 20대 시인의 시는 별도의 개념 규정이 필요 없이 20대에 등단하여 현재 20대의 나이를 살고 있는 시인이 쓴 시를 의미한다. 2016년 현재 1988년 이후에 태어난 시인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사실 30대를 조금 넘은 시인도 포함할 수 있는 게, 20대에서 30대 초반은 많은 시인들이 등단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젊은 시인 군(郡)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한때 2000년 이후에 등단한 1970년 이후 생의 시인들에 대한 집중 조명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는데 이는 30대의 젊은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30이 되지 않은 나이에 시집을 내며 주목을 받고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이 꽤 많다. 시인으로의 등단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고부적이고, 젊은 나이에 펼쳐내는 시 세계가 우리 시단의 아양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새롭게 바라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시인의 나이는 중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하다는 것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대처하고 빠르게 교체되는 시의 경향에 있어서 나이와 함께 묶어 시를 쓰고 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이기 때떄문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시는 나이와 관계없이 시 자체만을 봐야할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이 경우에도 나이에 해해 인식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현대사회에서 시인의 나이는 인지되어야 할 대상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20대의 시인도 그가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다면 언젠가는 노년 시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20대 시인의 시와 고령 시대의 시의 주축인 노년 시인의 시를 견주어 보는 것은 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시의 전체적 그림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두 양극단의 시적 경향을 통해 우리는 우리 시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것이다.  

 

 

  2.청년 시인과 노년 시인이 걷는 길은?

  이제 20대의 시인을 간단히 청년 시인이라고 일컫기로 한다. 현재 20대의 시인도 있지만, 20대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현재에는 3~40애 이상이 된 시인도 있기 때문에 그 유동성을 고려하여 20대를 거쳐온 시인을 '청년 시인'으로 통칭하고자 한다. 고령 시대의 시에 대한 논의는 노년 시인의 시와 고령 시대와 관련괸 시로 구분하여 할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노년 시인의 시에 국한하고자 한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도시 문화로, IT 환경 형성으로, 인터넷 기반 일상화 등으로 큰 변화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근대의 자연'에서 '현대의 도시'로 생활 기반이 이동한 것이다. 대학에서는 시창작을 가르치는 학과가 급증하였다. 많은 청년 시인이 문예창작학과에서 창작 공부를 하였다. 즉 자연발생적인 창작 의도보다 제도적인 창작 의도가 선행되는 교육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청년 시인의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은 '현대 문명'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우의 청년 시인 시에는 자연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고 문명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감각화가 두드러져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시대, 민주화운동시대 등 근대사를 겪어온 노년 시인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역사, 또는 청장년기에 겪어온 경험사를 토대로 하면서 서정성과 자연친화적 요소가 짙은 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양상은 연령대로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의 시인이 갖고 있는 취향, 개성, 지향점 등의 다양성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수 있지만, 고령화 시대에 청년 시인과 노년 시인의 비중이 누적적 격차로 인해 이원화, 양분화될수록 저 두 가지 양상도 청년, 노년 두 연령대에서 각각 더욱 짙어져 갈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 한 평론가는 '아름답고 온유한 자연에 대한 가상'(김수이, 『자연의 매트릭스에 갇힌 서정시: 최근 우리 시에 나타난 '자연'의 문제점』,『파라 21』, 이수, 2004년 겨울호)에 많은 시인이 무반성적으로 함몰되어 있는 경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 '자연'의 환상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김수이, 『자연의 매트릭스와 현실의 사막: 자연의 매트릭스에 갇힌 서정시 2』,『창작과 비평』, 창작과비평사, 2005년 가을호.) 이후 상상적이고 이상화된 자연을 노래하는 시와는 다르게 현대사회의 감정을 감각적 언어로, 비자연적인 내용으로 담아내고 있는 시들이 대거 양산되었고, 소위 '미래파' 시가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까지도 한국시단은 미래파와 포스트 미래파 등등의 여파 속에서, 종래의 시적 경향과 서로 뒤섞여 2000년 이전과는 색다른 시가 파생되고 있다. 한 청년 시인은 최근 문예지에서 청년기에 미래파 시를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김승일,『유보와 결단 사이에서』,『현대시』, 한국문연, 2016년 8월호.) 이를 좀 더 확대하여 보면 현대의 많은 청년 시인은 2000년대 이전의 '자연'과 관련된 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6년 여름의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20대 청년 시인이 나아가고 있는 길은 빠른 변화의 행보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대 앞으로도 20대의 청년 시인은 3~40대의 시인들이 행하고 있는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 존재론적 담론과 서정성 및 감각적 언어에 좀 더 첨예한 현대사회에서의 자아를 섞어 자신들만의 시적 경향을 이루어낼 것이다. 또한 이들 20대 청년 시인도 앞으로 몇 년 사이에 또 다른 20대의 청년 시인에게 자리를 내어 줄 것이고, 그때 가서는 또 다른 시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청년 시인의 시는 변화 주기가 짧을 것이다.

  노년 시인의 시는 노년기가 장기화되고, 갈수록 세대적 간극이 고령층에 적층될 것이므로 다양한 양상으로 발현될 것이다. 다만 변화 주기는 그렇게 짧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연으로의 지향과 시대적 관망의 내용이 청년 시인의 시와 비교할 때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3. 전망

  고령 시대는 많은 사람이 예전보다 오래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나이가 길어지고 노인층으로 진입하는 사람도 늘어나므로 65세에서 최대 100세 정도까지의 노인은 적층되는 구조로 나아갈 것이다. 따라서 노년 시인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 노년시도 많아질 것이다.(이 글에서는 노년 시인이 쓴 시를 '노년시'라고 일컫기로 한다.) 시의 내용도 다양할 것이다. 전통적 정서, 자연 예찬, 문명 비판, 현대사회에서의 존재성과 자아 정체성, 불명확한 감정, 불확실성 시대에서의 불안, 취약한 경제구조 속에서의 고민, 다양한 매체와 융합된 언어 등등 이질적이면서 동시대적인 시적 내용이 고령 시대의 노년시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 4~50대의 시인도 20년 정도 후에는 노년 시인이 된다. 지금의 노년 시인도 그때까지 생존하여 활동할 가능성이 크므로 예전에는 많지 않았던 노년 시인이 20여 년 후에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노년기 한 부분만 놓고 볼 때, 그 영역에서의 시적 다양성은 지금보다 훨씬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그 노년기에 노년 시인은 여전히 한국시단의 주축으로 활동할 것이다. 20대의 청년기를 거쳐 3~40대가 된 청년 시인들은, 그들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년 시인의 시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양적으로 팽만한 노년 시인의 시는 저출산 등으로 인해 보다 감축된 청년 시인의 시보다 더 많이 읽힐 것이고, 한동안은 오늘날의 시적 경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청년 시인의 시는 변화 주기의 진폭이 크므로 여전히 첨단의 시적 경향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오늘날의 문예지와 시집 출판 경향에 비춰볼 때 청년 시인의 시에 좀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청년 시인과 독자층을 발굴하고 확보하기 위한 졍쟁은 더 신선하고 더 낯설고 더 실험적인 청년 시인을 요구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이에 호응하는 20대 청년 시인의 시는 노년 시인의 시와 비교하여 또 다른 서정과 세계를 담고 있는 내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년 시인 층이 누적되고 정체되는 반면 청년 시인 층은 매년 새롭고 다른 신인으로 교체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고령 시대에 한국시단은 첨단과 유지 · 지속의 양분적 경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오늘날 3~50대의 시를 보면 첨단과 유지 · 지속의 시적 경향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즉 첨단이 20대만의 전유가 아니며 유지 · 지속도 60대 이상의 전유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령화는 가속될 것이고 인구 비중 전체를 놓고 볼 때 향후 20년 정도 후면 현재의 청년 시인도 노년 시인에 속하게 되어 노년시라는 큰 틀에서의 시를 쓰게 된다. 그리고 그 연령층에서 추구하는 시적 지향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것이고, 그러한 경향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청년 시인은 갈수록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고 소수이므로 시적 경향은 늘 첨예화되고 첨단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극단적이고 확대해석적이며 단언할 수 없는 논지이기도 하다. 통계적으로 바라본 전망이므로 다양한 시의 세계에 적용하기 힘든 관점이기도  하다. 또 이러한 전망대로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는 것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한국시단의 현상을 고령 시대라는 사회적 현상과 관련하여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20대의 청년 시인은 저마다 고군분투하여 자신의 시적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첨단의 행위를 이어갈 것이다. 반면 노년 시인은 어떠할 것인가. 노년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시적 갱신과 성찰의 의지가 줄어들 수 있는데, 그러한 노년 시인이 양적으로 증가하는 고령 시대인 만큼 한국시단 전제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정체와 침체의 양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령 시대에 노년 시인은 오히려 청년 시인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생명과학의 힘으로 생명기한이 늘어났다면 청년의 정신과 마음가짐도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연령으로는 노년 시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는 여전히 젊을 수 있다. 고령 시대는 건강과 젊음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령 시대에 육체적으로는 노년 시인이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청년 시인의 젊음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많은 첨단의 시 세계에 대한 탐구가 노년기에도 여전히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령 시대의 노년 시인은 연륜에 의한 성숙한 미적 감각을 갖고 있을 것이며 의식의 깊이 또한 충만할 텐데 여기에 청년 시인이 갖는 패기가 더해지면 한국시단은 들끓는 시의 열기로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것이 고령 시대의 노년 시인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수적으로 많으며 그에 따라 질적으로도 수준 높은 시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20대의 청년 시인에게, 나아가 한국시사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노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필자 역시 20여 년 후엔 노년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나이에도 지금의 시를 답습하고 싶지는 않다. 늘 새롭고 첨예한 시를 쓰고 싶다. 20대의 청년기에 등단하여 노년기로 저절로 흘러가고 있지만 유지나 지속의 시적 경향은 강제하고 싶다. 시에 있어서 고령 시대는, 어느덧 노인이 된 시적 주체가 청년기의 시적 모험을 끊임없이 전개할 때 그 의미와 가치가 형성될 것이다. 고령 시대에 시인은 어떤 태도를 보여햐 하는지 이제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수많은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늙은 시인이 될 뿐이고 늙은 시만이 많이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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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담 』2016-가을호 <기획특집 1> 전문

  * 윤의섭/ 1994년『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천국의 난민』『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마계』『묵시록』, 대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