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검지 정숙자 2016. 10. 23. 02:23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1914-1946, 32세)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라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전문, 『시인부락』창간호, 1936. 11.

 

 

   함형수(1914~1948) 시인은 가난해서 노동자 숙박소 등을 전전했지만 생전에 17편의 시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하모니카와 시 노트만은 꼭 휴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시집 한 권도 펴내지 못했지만, 「해바라기의 비명」만큼은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시인부락』은 서정주, 김달진, 김동리, 오장환, 김광균, 함형수 등이 참여한 시동인지로 '생명차'로 불렸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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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담 』2016-가을호 <다시 읽고 싶은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