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1915~2000, 85세)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흘러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나물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또 무엇하러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 서정주(1915.5.18.~2000.12.24.)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堂).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화사집』(1941),『신라초』(1960),『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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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담 』2016-가을호 <다시 읽고 싶은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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