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바구미를 죽이는 밤/ 문성해

검지 정숙자 2016. 10. 15. 21:33

 

 

    바구미를 죽이는 밤

 

    문성해

 

 

  처음엔 작은 활자들이 기어 나오는 줄 알았다

  신문지에 검은 쌀을 붓고 바구미를 눌러 죽이는 밤

  턱이 갈라진 바구미들을

  처음엔 서캐를 눌러 죽이듯 손톱으로 눌러 죽이다가

  휴지로 감아 죽이다가

  마침내 럭셔리하게 자루 달린 국자로 때려죽인다

  죽임의 방식을 바꾸자 기세 좋던 놈들이 주춤주춤, 

  죽은 척 나자빠져 있다가 잽싸게 도망치는 놈도 있다

  놈들에게도 뇌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우습다

 

  혐오도 죄책감도 없이

  눌러 죽이고 찍어 죽이고 비벼 죽이는 밤

  그나저나 살해가 이리 지겨워도 되나

  고만 죽이고 싶다 해도 기를 쓰고 나온다

  이깟 것들이 먹으면 대체 얼마나 먹는다고

  쌀 한 톨을 두고 대치하는 나의 전선이여

  아침에는 학습지를 파는 전화와 싸우고

  오후에는 종이박스를 두고 경비와 실랑이하고

  밤에는 하찮은 벌레들과 싸움을 한다

 

  난 죽이기 싫다고 해도

  누가 등이 딱딱한 적들을 자꾸만 내게로 내보낸다

  열기로 적의로 환해지는 밤,

  누군가 와서 자꾸만 내 이불을 걷어간다는 생각,

  자꾸만 내게서 양수 같은 어둠을 걷어간다는 생각,

  날이 새도록 터뜨려 죽이는 이 어둠은 가히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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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2016-10월호 <신작시# 2>에서

   * 문성해/ 1998년 《매일신문》, 2003년《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