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미를 죽이는 밤
문성해
처음엔 작은 활자들이 기어 나오는 줄 알았다
신문지에 검은 쌀을 붓고 바구미를 눌러 죽이는 밤
턱이 갈라진 바구미들을
처음엔 서캐를 눌러 죽이듯 손톱으로 눌러 죽이다가
휴지로 감아 죽이다가
마침내 럭셔리하게 자루 달린 국자로 때려죽인다
죽임의 방식을 바꾸자 기세 좋던 놈들이 주춤주춤,
죽은 척 나자빠져 있다가 잽싸게 도망치는 놈도 있다
놈들에게도 뇌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우습다
혐오도 죄책감도 없이
눌러 죽이고 찍어 죽이고 비벼 죽이는 밤
그나저나 살해가 이리 지겨워도 되나
고만 죽이고 싶다 해도 기를 쓰고 나온다
이깟 것들이 먹으면 대체 얼마나 먹는다고
쌀 한 톨을 두고 대치하는 나의 전선이여
아침에는 학습지를 파는 전화와 싸우고
오후에는 종이박스를 두고 경비와 실랑이하고
밤에는 하찮은 벌레들과 싸움을 한다
난 죽이기 싫다고 해도
누가 등이 딱딱한 적들을 자꾸만 내게로 내보낸다
열기로 적의로 환해지는 밤,
누군가 와서 자꾸만 내 이불을 걷어간다는 생각,
자꾸만 내게서 양수 같은 어둠을 걷어간다는 생각,
날이 새도록 터뜨려 죽이는 이 어둠은 가히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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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2016-10월호 <신작시# 2>에서
* 문성해/ 1998년 《매일신문》, 2003년《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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