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박남희_현실과 환상이 퍼 올린 불꽃의 춤(발췌)/ 테셀레이션 : 강인한

검지 정숙자 2016. 10. 13. 02:56

 

 

『시와표현』2016-10월호이 달의 시인_근작시에서

 

 

    테셀레이션

 

    강인한

 

 

  에셔의 도마뱀은 연푸른 스카프를 두르고

  책으로 쌓은 층계를 오르다

  지금 발치에 걸린 삼각함수에 골몰하고 있다.

 

  도마뱀을 덮은 후박나무 이파리, 초록에서

  초록이 다 빠질 때까지

  위가 허약하고 근골이 약한 나는 반하후박탕이나 달여 먹을까.

 

  내가 당신의 안으로 들어가고

  당신이 또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걸 사랑이라고 번역하면 될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삶은 가지무침을 먹을 때

  내일 저녁 우리들의 발치에 붙어서 빗발처럼 머뭇거릴 것이다.

  푸른 여름의 은행알들은 작년의 황금빛을 기억하며 후드득 떨어진

다.

 

  어제 떠난 이별의 그림자가

  내일 저녁 우리들의 발치에 붙어서 빗발처럼 머뭇거릴 것이다.

  푸른 여름의 은행알들은 작년의 황금빛을 기억하며 후드득 떨어진다.

 

  거울 속으로 눈이 내린다, 영하 5도의 사랑이여,

  거울 속 내 체온은 내려간다, 자꾸만 내려간다, 영하 10도의

  사랑이여, 내 발가락이 사라지며 잿빛 꼬리가 돋아나는 게 보이느냐.

    -전문, 『포엠포엠』2014년 가을호 

 

 

    현실과 환상이 퍼 올린 불꽃의 춤(발췌)_박남희

  이 시의 제목인 '테셀레이션'은 수학적인 원리를 미술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화폭 안에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구현시킨 네델란드의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cher)가 창안한 미술기법으로,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평면이나 공간을 겹쳐지는 부분 없이 채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에셔는 테셀레이션 기법을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입체가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가 되도록 함으로써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없애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1943년에 만든 '도마뱀(Reptiles)'인데, 이 작품은 도마뱀이 2차원의 스케치북 평면에서 나와 책이나 도형이 있는 3차원 공간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2차원 평면으로 되돌아가는 순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강인한의 시「테셀레이션」앞의 두 연은 이러한 모습을 시인의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에셔의 작품 도마뱀은 2차원의 그림에서 나와서 입체공간을 지나 다시 2차원의 그림 속으로 복귀할 뿐 삼각함수에 골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그림에는 후박나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시는 1, 2연과는 다르게 그 이후에는 에셔의 도마뱀은 등장하지 않으면서 화자의 사랑학이 전개된다. 그렇다면 1, 2연은 화자가 주장하는 사랑학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1연의 '삼각함수'는 아마도 사랑의 역학관계를 암시하는 것 같고, 2연에서 후박나무 이파리가 "초록에서/ 초록이 다 빠질 때까지는" 사랑의 시간성과 관계되는 것처럼 보인다. 시인은 3연에서 "내가 당신의 안으로 들어가고/ 당신이 또한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걸 사랑이라고 번역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의 위상학이야말로 에셔의 테셀레이션 기법 안에 넉넉히 수용된다. 5연의 "어제 떠난 이별의 그림자가/ 내일 저녁 우리들의 발치에 붙어서 빗방울처럼 머뭇거릴 것이다"는 진술은 순환과 반복을 특성으로 하는 테셀레이션의 특성과 연관되고, 마지막 연의 거울 속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 역시 현실과 가상이 하나를 이루는 테셀레이션적 상상력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테셀레이션의 특성을 시적 상상력으로 원용해서 '긴밀한 사랑의 관계성'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사랑 층위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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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남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시집『폐차장 근처』외.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