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2016-10월호【이 달의 문제작|시 부문】에서
구경꾼_ 사막 1
이경
낙타를 빌려 타고 사막을 구경했다
하이데거를 빌려 타고 서양철학을 구경하듯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명사산을 돌아 나왔다
갑론을박 꼬리에 머리를 부딪는 낙타 행렬을 뒤따르는데
사막이 말씀의 빗자루로 낙타 발자국들을 쓸어내고 있다
학문은 진리를 탐구한다지만 진리는
지삭의 쓰레기 더미에 깔려 압사할 지경이다
사막은 깨끗이 쓸어놓은 화선지를 맙 밑에 깔아주며
맨 처음의 발자국을 찍어보라 하신다
-전문, 『문학의 오늘』2016. 가을호
▶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위의威儀(발췌) _ 유성호
이경 시인은 최근 사막을 아흐레 동안 떠돌았노라고 회상한다. 이러한 경험적 직접성이 담긴 시편에서 시인은 "낙타를 빌려 타고 사막을 구경"했다고 말한다. 마치 사람들이 하이데거를 들먹이며 서양철학을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은 잠시 낙타 타고 가본 사막에서 '구경꾼'일 뿐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인은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낙타 행렬을 뒤따르는 순간, 사막이 "말씀의 빗자루"를 가지고 발자국들을 지워가는 것을 바라본다. 왜 사막은 "말씀의 빗자루"로 구경꾼의 발자국들을 쓸고 있을까? 어쩌면 사막은 구경꾼들의 답사 행렬을 쓸어내면서 그들로 하여금 "깨끗이 쓸어 놓은 화선지"에 "맨 처음의 발자국"을 찍어보라고 하는 듯하다. 이 "말씀의 빗자루"와 "깨끗이 쓸어 놓은 화선지"와 "맨 처음의 발자국"은. '하이데거'나 '갑론을박'이나 '지식의 쓰레기 더미'를 모두 뛰어넘어, 어떤 근원적 질서를 원형적으로 함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심미적 충동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훌쩍 넘어, 가장 근원적인 질서를 발견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 결실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가, 바로 그 순간, 반짝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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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평론집으로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침묵의 파문』『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등. 김달진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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