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최도선_나를 읽다(발췌)/ 그리다 : 박해성

검지 정숙자 2016. 10. 18. 12:20

 

 

<시조 리뷰>

 

 

    그리다

 

    박해성

 

 

  하도 잠이 안 와서 새 한 마리 그렸지요

  형형한 눈매에다 잘 벼린 발톱까지

  날개는 접어두었소, 행여 날아갈까 봐

 

  그만 자자, 불 끄고 겨우 눈을 붙였더니 웅크렸던 그 새가

  커다란 죽지 털고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내 발 밑에 엎드렸소

 

  나 그의 깃털에 묻혀 먼 하늘 훨훨 날다

  동백 지는 소리에 화들짝 둘러보니

  산 한 채 뿌리째 뽑아 움켜쥐고 돌아왔소

 

  내 안에 터를 잡아 산을 옮겨 심었지요

  밤이면 그 산이 우렁우렁 앓는 소리

  통증은 썩을 줄 몰라 무덤처럼 쌓이는데

  어느 밤중 폭풍우가 말을 몰고 내달았소

  천지개벽, 피 묻은 알을 깨고 부화하듯

  홀연히 봉분을 박차고 활개 치는 한 마리 새

  아 나는 새였구나, 나 모르게 새였구나! 첩첩 전생을 넘어

  구만리 창천을 건너 한 세상 나뭇가지에 잠시 날개 쉬어가는

 

  구전설화 숲속에서 울다가 노래하다

  어느새 내 머리엔 억새꽃이 소슬하고

  꿈속의 꿈을 꿈꾸던 새소리는 꿈만 같소

     -전문, (시집『루머처럼, 유머처럼』2015)

 

 

   나를 읽다 (발췌) _ 최도선

  모든 문학은 상상에서 나온다. 상상이 완벽한 구조를 갖추면 상상이 뛰어다니고 말하며 그 상상이 실재 진술로 느껴진다. 위의 작품도 허구보다 사실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자화상을 그려가고 있는 이 작품이 삶의 포부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연에 "어느새 내 머리에 억새꽃이 소슬하"다고 했으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 쓸쓸한 감회에 젖어 꿈만 같은 시간이 흘렀음을 그려놓고 있음이다. 이런 자기 인식의 시는 대부분 순진무구한 세계를 향해 비전을 꿈꾸는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생동감이 있고 詩句의 격조는 높고 힘차다.

  시의 화자인 나는 지상에 없는 상상의 새 한 마리 그려가고 있다. 눈에 광채가 빛나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산해경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새를 그리고 있다. 시인이 그런 존재이고 싶은 갈망의 존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려놓은 그 새가 구만리 창천을 향햐 날아간 것 아닌가? 그 새는 바로 박해성 시인이었고 산 하나를 옮겨 놓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산이 무엇인가? 시의 씨앗, 시의 터전 아닌가? 그러나 그곳은 고뇌가 쌓여 있고 정신이 고양되어야 하는 이곳에 통증의 무덤이 쌓여갔으니 얼마나 많은 날들의 긴장된 사유의 시간이 필요한가?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아픔을 동반해야만 되겠다는 내면을 표현함에 있어 봉분을 박차고 날아오르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비상한 활력을 부여하고 있음이다. 워즈워스가 말했듯이 "시란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다. 시인의 정신 자체가 시라고 보는데 마지막 연의 종장의 표현은 꿈만 같다고 했으니 그 새가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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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표현』2016-10월호 <시조 리뷰>에서

  * 최도선/ 1987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집『서른아홉 나연 씨』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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