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더 멀어지자(金慶美)/ 김경미

검지 정숙자 2016. 10. 10. 19:00

 

 

    더 멀어지자

 

    김경미(金慶美)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내 영혼 얼마나 상했는지

  이럴려던 게 아니었는데

  밤의 빗소리도 자운영 꽃밭도 설탕냄새 나는 눈물이며 유리창들

  기차 같던 손목과 포옹들도 잊은 지 오래다

 

  귀가하니 몇 년 만에 편지가 와있다

  원망과 악담이 가득한 편지

  다들 뒤에서 혀 내두르는 이를 가까이했던 죄가 아니라

  본인만 본인의 허물을 모르는 건

  그녀와 나와 온 지구의 허물

 

  반성하므로 그녀와 나는 각자 고독해야하며

  고독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지를 나는 확인하겠으며

  없으면 나라도 머잖아 쓰겠으며

  쓰기 전에 몇 겹이고 더 고독하겠으며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건 잘못 산 것이란 단정에

  화를 냈던 것

  저녁 해 지는 길 위에서 낮의 일들을 후회하는 것과

  낙엽이 되어서야 멀리 걸어가는 나뭇잎

  무릎 꿇고서야 투명해지는 진실

  바람에 쓰러진 떠들썩한 간판

  해치고 헤치며 상한 영혼

  모두를 한 상자에 담아 조건 없이 반성하겠으나

 

  너와 나는 부디 이대로 더 멀어져 더 쓸쓸해지자

  입과 귀가 다르게 달린

  서로가 별빛처럼 보일 때까지.

     -전문-

  

   시작노트 _ 부디 더 멀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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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2016-10월호 <시>에서

  * 김경미(金慶美)/ 1959년생, 1993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밤의 입국심사』. 지혜서『그 한마디에 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