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링
유계영
입술과 엄지손가락이 가장 먼저 생기더군요
하마터면 슬픔이라고는 못 배우고 태어날 뻔했어요
내가 나를 물고 빤 흔적이 쑥스럽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말아 쥐며
너 같은 자식을 낳아라
축생으로 태어나
하루 종일 먹고 하루 종일 잊어라
우리는 저주하기 위해
주먹을 풀고 기도하는 손
나도 내 다음이 기대가 돼요
자, 달걀을 쥔 느낌으로 손을 쥐어 보세요
그래야 자연스럽습니다
사진 속의 애꾸눈이가 남기고 간 빅토리
손 안에 가둔 알 속에서
왜 가슴을 쓸어내렸을까요
펼쳐진 손바닥은
기차역 앞
뚱뚱한 지갑을 엉덩이 포켓에 꽂은 사내들이
아무 데서나 흰밥을 밀어 넣습니다
방금 전에는 흰 구름이 흰 구름을 앞질렀는데
나는 주먹을 풀었다 쥐었다 하며
바람에 부러지는 나뭇가지를 보고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 열차에 오른 우리가
풍경을 향해 흔들던 손바닥은 어디에 멈추었나요
엄지손가락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흔들리던 그 손은요
-전문-
*『Littor 릿터』2016. 8-9월(창간)호 <시>에서
* 유계영/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온갖 것들의 낮』
--------------
※ Littor는 명사 Literature(문학)와 접미사 -tor(-하는 사람)을 합한 말이다.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사전에는 없지만 많은 이들의 책장 어느 곳에 등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기에서 책등을 보이며 서 있다가 어느 날 다시 뽑혀 나와 이런 일이 있었군, 이런 작품을 읽었지, 생각하게 하는 문학잡지였으면 좋겠다. <Editor’s Note(발췌)>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갈대/ 신경림 (0) | 2016.10.09 |
|---|---|
| 치약 튜브의 구멍이 작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윤희상 (0) | 2016.10.08 |
| 마카롱/ 김이듬 (0) | 2016.10.07 |
| 자정의 거울/ 한선자 (0) | 2016.10.06 |
| 공친 날/ 김길자 (0) | 2016.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