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서정적 산문 다섯 편>- 2
물에 비친 영상
솔제니친(1918~2008, 90세)
물살이 빠른 급류의 표면에는 가까이 있는 거나 멀리 있는 거나 아무것도 반영되
지 않는다. 비록 그 물이 맑다 하더라도 또 물거품이 일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찬가
지다.
쉴 새 없이 파문이 일고 있는 잔물결이나 소용돌이치는 물살에는 그 반영이 또렷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고 믿음직하지 못하다.
물살이 여러 개의 강을 지나 이윽고 넓고 넓은 하구(河口)에 이르면, 또 바닷가의
잔잔한 물굽이나 물결이 요동치지 않는 호수에서만 우리는 편편한 거울을 보듯 기슭
의 나무 잎사귀들, 날개 돋친 듯 떠도는 널따란 구름을, 하늘이 부어 준 검푸른 바닥
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원히 신선하고 명쾌
한 진리를 볼 수 없고 반영시킬 수도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어디론가 전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블로그 후기: 매일 한 편씩 5일 동안, 그후 '해설' 수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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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바다』 2016-가을호 <이태동/ 해외 수필 읽기>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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