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서정적 산문 다섯 편>- 1
호흡
솔제니친(1918~2008, 90세)
지난 밤 가랑비가 내렸다. 지금도 간혹 가볍게 비를 흩뿌리며 비구름이 하늘을 헤
엄쳐 간다.
나는 꽃이 시들어 가는 사과나무 밑에 서서 숨을 몰아쉰다. 비 온 뒤라서 사과나무
뿐 아니고 주위의 온갖 풀이 수분을 내뿜고 있다.
대기(大氣)를 취하게 하는 이 감미로운 향기를 무엇으로 다 표현하리. 나는 이 대기
를 허파 가득히 빨아 들이켠다. 가슴 그득히 그 방향(芳香)을 느낀다. 나는 숨을 내쉬
며 공기를 들이마시고 또 마신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 때로는 눈을 뜬 채, 때로는 사르르 눈을 감은 채.
아마 이것이 자유라는 것일 게다. 감옥이 우리들에게서 빼앗아 가는 무릇 자유 중
에서도 가장 귀중한 자유, 단 하나의 자유인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숨을 내쉬고 들
이마실 수 있는 자유.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맛있는 감미로운 술도 그리고 아무리 달콤한 여자의 입술
도 나에게는 이 대기, 꽃향기와 습기에 넘친 이 신선한 대기보다 더 감미로울 수
는 없다.
비록 이곳이 짐승우리 같은 5층 건물 빌딩에 짓눌리고 있는 조그맣고 하찮은 정
원일지라도 상관없다.
총알을 쏘아 대는 듯한 모터사이클 소리도, 개가 짖는 듯한 전축과 라디오 소리
도 북을 치는 듯한 확성기 소리도 더 이상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다. 나는 비 온
뒤의 사과나무 밑에서 호흡을 한다. 이렇게 숨을 내쉴 수 있는 한 아직은 더 살아갈
수 있으니까! ▩
(※ 블로그 후기: 매일 한 편씩 5일 동안, 그후 '해설' 수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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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바다』 2016-가을호 <이태동/ 해외 수필 읽기>에서
* 이태동/ 문학평론가,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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